한국일보>

강주형 기자

등록 : 2018.03.15 04:40
수정 : 2018.03.15 09:43

[난 아마추어 스타]셔틀콕 맞은 맥주캔 ‘펑’… 20㎏ 살 뺀 제자도 있죠

등록 : 2018.03.15 04:40
수정 : 2018.03.15 09:43

<1> 배드민턴 김진수

초등2학년 때 빵 먹고 싶어 시작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고졸 강사로 나서

동호인 대회 단체전 우승 이끌어

“할머니가 청년 이기는 정직한 운동

체육관 설립 ‘고래의 꿈’ 꿉니다”

지난 8일 충북 청주시 SK하이닉스 체육관. 30여명의 눈이 ‘배드민턴의 달인’ 김진수(33)씨의 라켓에 쏠려 있었다.김씨는 4~5m 떨어진 네트에 박힌 맥주캔을 잠시 노려보더니 강하게 스매시했다. 셔틀콕은 맥주캔을 정확히 강타했고 캔은 그 자리에서 터지며 거품을 뿜어냈다. 탄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김씨는 실업 소속의 프로 선수는 아니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배드민턴 생활체육계의 최고수다. 2004년 전국협회장기 복식 우승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각종 대회 우승 트로피만 수십 개에 이른다. 한 해에 무려 7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린 적도 있다. 지난해에는 20여 년 동안 경기도가 독식하다시피 한 전국생활문화축전 배드민턴 단체전에서 충북도가 우승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최근에는 셔틀콕으로 수박 깨기, 맥주캔 터뜨리기 등 힘과 정확도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부터 셔틀콕 저글링 등 묘기를 개발했다. 김씨는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아주 즐거워해요. 일반인들이 배드민턴에 흥미를 갖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웃었다.

배드민턴 아마 고수 김진수씨가 8일 충북 청주시 SK하이닉스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의 종목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그는 1994년 충북 옥천군 청산초교 2학년 때 처음 라켓을 잡았다. 학교 특별활동으로 다양한 운동부가 있었는데, 유독 배드민턴부만 운동이 끝나면 빵을 나눠줬다고 한다. “그 빵이 어찌나 맛있게 보였던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사실 빵 먹고 싶어서 배드민턴을 시작했어요”

철없이 시작했지만,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2000년 전국소년체전 단체전에서 우승했고 여름철 종별선수권대회에서는 단체전과 복식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 중2 때는 청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돼 한일 교류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고교 때에도 지금의 아내가 된 임보라(32)와 혼합 복식조를 이뤄 전국 학교대항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당연히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여러 대학에서 입학 요청 ‘콜’이 왔다.

하지만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식당 일을 하는 어머니가 김진수씨와 씨름을 하는 형 모두 뒷바라지 하기는 버거웠다. 그래서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일반 기업 등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배드민턴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졸 신분으로 회사 취업이 쉽지 않았고, 자유분방한 성격도 딱딱한 반복 업무보다는 자유로운 동호회 강습에 더 적합했다. 청주시 배드민턴 동호회 ‘직지 클럽’에서 막내 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김씨는 “동호회 회원들이 저만의 강습 방법을 좋아해 수입도 또래 일반 직장인보다 많았어요”라고 귀띔했다. 배드민턴을 이론적으로도 보강하기 위해 이듬해에는 건국대 생활체육학과에 입학했다. 흘린 땀만큼 성과가 나오는 점도 지금껏 배드민턴 강습에 전념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60대 할머니가 20대 남자 대학생을 코트에서 이리저리 ‘가지고 놀 수’ 있는 게 바로 배드민턴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정직한 운동이죠.”

김진수씨가 8일 충북 청주시 SK하이닉스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전국대회 때마다 만나는 맞수가 있다. 한 살 많은 전태일(34)씨. 결승전이나 준결승전은 물론, 예선에서도 유독 자주 맞닥뜨린다. 대회에선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기 싸움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만큼 미운 정도 들었다. 김씨가 출전을 안 하면 일부러 전화해서 “대회에 나오라”고 독촉한다. “너(김진수) 안 이기고 우승하면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해 준다”는 이유에서다.

김진수씨가 8일 충북 청주시 SK하이닉스 체육관에서 동호인들에게 배드민턴을 가르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기억에 남는 제자도 많다. 아시아주니어선수권 복식 3위에 오르는 등 차세대 유망주 신태양(17)군도 김씨가 발굴한 제자다. 배드민턴을 통해 무려 20㎏ 다이어트에 성공한 제자도 있다. 유독 까다롭게 구는 40대 여제자가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왜 그렇게 해야 하나요’라며 묻는데 괴로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 경험이 초심자 레슨에는 오히려 약이 됐다. 지난해 9월 네이버 TV가 주최하는 ‘배드민턴 강의 동영상 공모전’에서 재생 점유율 40%로 1등을 차지했는데, 이 여제자의 질문들이 큰 도움이 됐다. 기본 스텝과 라켓 쥐는 법 등 초보 강의부터 기본 스트로크와 게임 운영 요령까지 철저히 동호인의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주려 노력한 것이 주효했다.

김진수씨가 8일 충북 청주시 SK하이닉스 체육관에서 강력한 스매시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새우잠을 자면서 고래 꿈을 꾼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비록 비좁은 방에서 새우잠을 자며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배드민턴 전용 체육관을 설립하겠다는 ‘고래의 꿈’은 여전히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은 소외계층 어린이 대상으로 재능기부 활동을 시작할 생각이다.

“2004년 청주에 처음 왔을 때 배드민턴 클럽이 5개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70여 개로 불어났습니다. 저도 배드민턴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젊은 만큼 할 일이 더 많아요.”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