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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 개방과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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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 개방과 관용

입력
2017.06.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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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이자 작가인 콜린 우다드는 북미대륙이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 국가로 이뤄져 있다는 통념을 부인하고, 그 대신 11개의 개별 민족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한다. 이 11개 민족간 갈등과 협력이 북미 역사를 움직였다. 글항아리 제공
역사가이자 작가인 콜린 우다드는 북미대륙이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 국가로 이뤄져 있다는 통념을 부인하고, 그 대신 11개의 개별 민족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한다. 이 11개 민족간 갈등과 협력이 북미 역사를 움직였다. 글항아리 제공

‘제국’이란 말이 나오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부르르 떤다. 그토록 칭송받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도 제국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자 국내 진보 논객들은 격한 비판을 쏟아냈다. ‘로마 제국의 보편성’에 대해 언급한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도 순진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을뿐더러, ‘제국’이란 책을 통해 제국의 좌파적 버전을 제시했던 마이클 하트ㆍ안토니오 네그리는 몽상가 취급을 받기도 한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같은 책으로 주목 받았던 유발 하라리도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했다가 한국 기자들의 혹독한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럴 법도 하다. 중국, 일본에 이어 소련에다 미국까지. 우리 역사의 큰 축이 곧 제국과의 길항이었으니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다. 우리에게 ‘제국’이란 기호 그 자체가 절대 악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제국이 지니고 있는 일반성, 혹은 보편성’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려면 심호흡 한번 크게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국의 색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제국은, 반드시 악의 축인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먼저 ‘분열하는 제국’. 책을 열면 북미 대륙을 아프리카 부족의 영역표처럼 그려둔 지도가 눈길을 끈다. 북미 대륙이란 미국(51개주), 캐나다(13개주), 멕시코(31개주) 3개 연방국가로 구성된 게 아니라 11개의 서로 다른 민족들(nations)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것으로 본다. 어쩌다 보니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각기 다른 국가에 속해 있을 뿐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민족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가령 가장 수준 높은 개방성을 자랑하는 네덜란드인들이 정착한 미국 동부의 ‘뉴네덜란드’는 역시나 자유의 가치를 가장 높이 친다. 그 위에 위치한 ‘양키덤’은 칼뱅주의자들이 정착한 곳으로 정부를 시민 힘의 확장된 표현으로 여겨 신뢰할 뿐 아니라, 정부에 의한 사회개혁을 열렬하게 지지한다. 샌프란시스코, LA 등 미국 서부 해안가의 ‘더 레프트 코스트’는 ‘양키덤’이 황량한 서부 지역 개척을 위해 진출해서 장악한 곳으로, 오늘날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창의성과 번영은 양키덤 문화가 남긴 흔적이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미국 보수의 본산 ‘타이드 워터’ ‘그레이터 애팔래치아’ ‘딥 사우스’가 나타난다. 영국 젠트리 계층이 정착한 타이드 워터 지역은 권위와 전통을 중시하고 대중, 평등 같은 단어를 싫어한다. 북아일랜드ㆍ스코틀랜드 지역 전사계급 사람들이 정착한 그레이터 애팔래치아는 ‘겉멋’은 딱 질색이다. 그래서 이웃 타이드 워터의 귀족 놀음도 경멸하지만, 저 너머 양키덤의 열렬한 사회개혁 의지도 귀찮아 한다. 노예소유주들이 주축이 된 ‘딥 사우스’는 지금까지도 인종이 절대적 기준이다.

저자는 16세기 이래 미국의, 한발 더 나아가 북미의 역사를 이런 특색을 갖춘 11개 민족들간 투쟁과 협력의 역사로 재조명한다. 가장 선진적일 것이라 전제되는 미국 정치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뭔가 있어 보이는 정치분석을 한답시고 진보니 보수니 어쩌고 떠들어봐야 결국 ‘경상도 연합이냐, 전라도 연합이냐’로 결판나는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교통ㆍ통신이 발달한 지금도 이게 통용될까. 저자는 두 가지 점을 든다. 하나, 초기 정착민이 지닌 문화적 관습의 힘이다. 초기 정착 이후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뒤섞이지만, 뒤이어 온 사람들은 기존 문화에 동화될 수 밖에 없다. 또 하나는 교통ㆍ통신의 발달은 거꾸로 문화적 동화를 촉진한다. 끼리끼리 모여 놀기가 더 쉬운 세상, 그들끼리 뭉친다. 11개 민족들이란, 강력한 문화적 동질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저자가 놓치지 않는 주요 포인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미국답게 하는 점이 무엇이냐다. 저자는 이렇게 다양한 11개 민족간 갈등을 하나의 중앙정부 아래 묶어놓기 위해서는 오직 개방성과 관용 밖에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개방성과 관용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잃을 경우 11개 민족들은 결국 뿔뿔이 제 갈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뒤집어보자면 이 책은 개방성과 관용이 어떻게 분투했는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분열하는 제국

콜린 우다드 지음ㆍ정유진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504쪽ㆍ2만4,000원

칭기스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

잭 웨더포드 지음ㆍ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발행ㆍ552쪽ㆍ2만8,000원

‘칭기스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책과함께)는 몽골 연구로 유명한 잭 웨더포드가 쓴 칭기스칸 일대기다. 20여년 동안 몽골 현지 연구를 진행한 끝에 웨더포드는 출신에 따른 차별금지, 완전한 종교의 자유, 법 앞에서의 평등 등 광범위한 사회개혁 조치와 이를 뒷받침하는 교통ㆍ운송 시스템의 혁신 등을 몽골제국의 성공 원인으로 꼽았다. 몽골제국이라면 잔혹한 살육과 약탈만 떠올리던 고정관념을 뒤엎고, 제국이 지닌 보편적인 문명적 요소를 추출해낸 것이다.

이번 책은 그 가운데 완전한 종교의 자유라는 주제 그 자체에 집중한다. 기록을 보면 실제 칭기스칸은 만년에 종교 문제에 골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의 판도가 드넓으니 지역 내에 무슬림, 도교 신자, 불교도, 유교 신자, 조로아스터교도, 마니교도, 힌두교도, 유대교도, 기독교도 등 다양한 신자들이 살았다. 부족, 도시, 국가를 정복하는 건 쉬웠다. 그러나 다양한 종교, 또 그 종교 내 복잡한 파벌들간의 투쟁은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설득도 하고 탄압도 하고 종교지도자간 논리 배틀까지 벌여봤던 칭기스칸은 마침내 완벽한 종교의 자유를 선언해버린다. 누구나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못 박아버렸다. 13세기 칭기스칸의 이 선언은 나중에 유럽에서 크게 환영받는다. 극심한 종교 갈등을 겪다 보니 “유럽의 왕들이 칭기스칸만도 못한 소인배”라는 한탄이 나온다. 속수무책으로 정복당하는 바람에 몽골인을 지옥 속 괴물 ‘타타르’라 부르던 유럽인들 입에서 말이다. 저자는 이런 유럽 내 흐름이 대서양 건너 미국에 가 닿았고,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선언한 토머스 제퍼슨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제국은 제국을 알아본 셈인데, 역시 그 제국의 핵심은 개방성과 관용이다.

제국에 당한 경험이 많은 우리에게야 ‘제국의 보편성’과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애써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정치적 선전선동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미국과 몽골의 수많은 오류들도 분명 존재한다. 모든 권력은 크기가 커질수록 적당히 위선적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한가지 질문은 남는다. 제국을 욕하기 전에 우리가 제국을 뛰어넘을 만큼의 개방성과 관용을 먼저 선보인 적이 있었던가.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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