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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중동]우방 사우디엔 손해, 미운 이란엔 이득… 美 ‘IS와 전쟁’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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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중동]우방 사우디엔 손해, 미운 이란엔 이득… 美 ‘IS와 전쟁’의 모순

입력
2017.03.0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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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모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ㆍ중동연구소 소장

IS는 사우디가 맹주인 수니파

진압군은 대부분 시아파 세력

시리아 독재정권까지 돕는 셈

美 이익과 이해상충 되지만

테러ㆍ급진주의 진압이 최우선

이란 핵협상 파기도 미룰 듯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정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워싱턴 시내에서 반트럼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정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워싱턴 시내에서 반트럼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미국 우선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모든 국제관계를 일순간에 파도타기(서핑)와 같은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단편적이거나 모호하거나 일관성이 없는 대외 정책들 때문이다. 그나마 예측 불가능했던 공약들이 조금씩 구체화되면서 어느 정도 정책의 패턴을 읽을 수 있게 된 게 다행이다.

기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파트너에게는 보상을, 경쟁자에게는 처벌을 내리려 하고 있다. 기존에 맺어온 관계와 상관없이 앞으로 미국에 이익을 가져다 줄 국가와는 유리한 무역조건과 정치 관계를 유지하지만, 미국에 손해를 끼치는 나라에는 높은 수입 관세, 외교적 고립, 심지어 군사 행동까지 감행 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내각 역시 각각 ‘보상’(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처벌’(허버트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내릴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중동지역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트럼프는 대외정책 최우선 과제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퇴치와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의 진압을 꼽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모순을 안고 있어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30일 이내에 IS 격파 및 말살 계획을 제시하도록 지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IS 퇴치 및 이슬람 테러 진압은 사실 외교정책 문제라기보다는 국내문제에 가까운데, 제일 먼저 취한 게 중동국가의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입국 제한조치, 즉 반(反)이민 행정명령이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 내 국제테러에 대한 두려움과 이슬람 과격 세력에 대한 혐오 등 반이민 여론을 등에 업고 당선됐다.

하지만 트럼프가 말하는 IS와의 전쟁은 모순투성이다.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축출돼야 한다고 여기는 독재 정권을 돕게 된다거나, IS와 싸운다면서 IS와 싸우고 있는 우호세력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터키와는 IS와 싸우는 쿠르드족 민병대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는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다. 터키가 이들을 테러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IS와의 전쟁은 수니파 무슬림 세력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도 악화시킬 수 있다. IS는 태생적으로 수니파 무슬림으로 구성돼 있어 이들 근거지에 대한 공습은 곧 수니파 민간인들의 막대한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IS와 싸우는 주변 세력들은 대부분 시아파 무슬림들로 구성돼 있다. 시아파 무슬림 세력의 맹주인 이란을 등에 업은 이라크 민병대나 시리아 내 알라위파와 동맹이 바로 그들이다. 때문에 미국이 IS 퇴치를 명목으로 개입을 한다는 건, 알라위파에 속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과 이라크 민병대의 승리를 돕게 되는 것으로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숙적 이란과의 패권 경쟁에서 밀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미국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의 핵심 중동정책으로 꼽히는 이란과의 핵 합의안(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 역시 미뤄질 공산이 크다.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체결한 이란과의 핵 합의안을 ‘역사상 최악의 협상’이라 비난하며 취임 즉시 이를 해지할 것을 공언해왔다. 하지만 IS의 퇴치가 이란(시아파)의 고립보다 중요한 미국의 최우선 과제라는 점에서 핵 합의안 해지 문제는 뒤로 밀릴 수 있다. 최근 북한의 핵무기 확대와 장거리 탄도 미사일 개발 성공 등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긴박한 상황도 미국으로 하여금 이 문제에 집중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아울러 이란과의 핵 합의안 해지 문제는 주변 국가, 특히 이스라엘과 터키의 이해관계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오바마의 이란 정책에 반대해 온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 핵 합의안 파기를 위해 미국과 의논하기 시작한 것은 언뜻 트럼프와 이스라엘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안보 정책은 일관되게 이란의 핵개발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유, 가스 등 에너지 문제에 있어 이란과 긴밀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터키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터키는 2015년 11월 터키 전투기의 러시아 항공기 요격 사건 후 이란과의 정치ㆍ안보적 관계까지 개선한 상태다. 이런 시점에 이란의 핵 합의안 해지를 위해 터키가 미국과 손을 잡는다면, 이란과 터키의 관계는 악화될 건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인들은 미국 예외주의에 관한 영웅적 신화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미국을 실제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진 존재라고 상상해 왔다. ‘세계의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위세를 떨치는 동안, 획득한 패권주의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 착각해 왔다. 하지만 신고립주의 또는 보호 무역주의로 일컬어지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그러한 상상과 착각이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미국의 개입은 여러 가지 모순만 보여 줄 뿐이다. 미국 우선주의 관점에서 도대체 누구를 미국의 친구(이익)로 누구를 적(손해)으로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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