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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크리스마스 캐럴 혹은 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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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크리스마스 캐럴 혹은 포성

입력
2010.12.2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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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피츠버그에서 한국이 2010년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선정되던 날 제 마음속에는 감격의 눈물과 함께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2009년 12월 UAE와 원자력 수출협정이 체결되던 날 부르튼 입술 사이로 '대한민국의 국운이 열리고 있구나'하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올 1월 초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신년연설을 시작했다. 사실 우쭐할 만했다. 세계가 한국의 경제위기 탈출 속도와 방향에 감탄과 부러움을 쏟아내고 삼성전자 등 대표 기업들은 세계 시장 점유율 제고와 사상 최대 이익으로 화답했다. 프랑스 등을 물리치고 200억달러 규모의 UAE 원전을 수주해 '원자력 분야의 새로운 호랑이로 떠올랐다'(르 피가로)는 평가를 받고 도요타의 리콜사태로 우리 자동차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등 분명 '국운'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藏頭露尾'에 담긴 우리 자화상

한국에 적대적 논조로 일관하던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마저 "한국은 더 이상 약자(underdog)가 아니다"라고 평가할 정도였으니 자신감은 넘쳐났고 국가신뢰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3월 말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이 몰고 온 '북한 리스크'와 정치사회적 갈등도 시장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한국 경제의 내성과 위험관리 능력을 세계가 인정했다는 뜻이겠다.

파이가 커지고 나니 역시 분배가 문제였다. 일자리와 임금을 나누며 힘겹게 위기를 헤쳐왔는데, 나라 경제는 더욱 커졌다는데, 국민들의 평균적 삶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500만 자영업자 시대가 말하듯 중산층은 서민층으로, 서민층은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상위 20%에 속하는 고소득층이 나머지 80%의 소득과 맞먹는 '2대 8 사회'가 개선된 조짐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식 실업자는 73만명 안팎이지만 실업자와 18시간 미만 취업자, 취업준비생과 구직 단념자 등을 합친 '사실상 실업자'가 400만명을 넘긴 것은 한 단면이다.

금융위기 여파로 2년간 뒷걸음질쳤던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다시 2만달러를 회복하고 내년에는 2만3,000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한국은행 자료는 결코 유쾌한 소식이 아니다. 환율효과나 세금ㆍ부담금 등을 배제하고 단순하게 자료에 접근하면 3인 가족의 경우 연간 6,300만원, 4인 가족의 경우 8,400만원 이상 벌어야 겨우 평균을 유지한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최근 '통큰 치킨' 소동과 SSM 파동에서 드러난 자영업자들의 열악한 처지와 자신을 포함해 3~4인 가족을 부양하는 임금 근로자의 연봉 추세를 볼 때 평균적 국민에게 이 정도 소득은 언감생심이다. 부가 일부 계층에게로 몰려간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의 국정화두로 공정사회론을 내세운 것은 진정성 여부를 떠나 불가피했던 측면이 크다. 연초 '더 큰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일로영일(一勞永逸ㆍ지금의 노고를 통해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을 화두로 제시한 것에 비춰봐도 그렇다. 그러나 패자부활전 상생 동반성장 등 화려한 구호는 많았으나 가진 계층의 사회적 책임을 이끌어내는 제도와 의식개혁에선 별 성과가 없다.

이 대통령은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빛냈다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후진국 개발이슈가 부각된 점을 들어 국제사회로 공정담론의 외연을 확장시켰다고 자부하지만 내치의 평가는 인색할 수밖에 없다. 4대강 등 토목사업에 대한 집착은 IT투자 등을 후순위로 밀어내고 감세와 성장에 치우친 논란은 분배와 안정이 들어설 자리를 빼앗았다. 일자리의 원천인 중소기업은 성장판이 닫혔다고 아우성이다.

살림 나아진 것 없이 피로감만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뒤이은 폭력-날치기 국회는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교수신문이'장두노미(藏頭露尾ㆍ쫓기는 타조가 머리만 덤불 속에 숨기고 꼬리는 내놓은 채 쩔쩔매는 모습)'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이유이겠다. 청와대는 밤낮없이 뛰어다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너무 가혹하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든 안보든 대통령은 무한책임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즐길 시기에 포성을 걱정해야 하는 국민들에게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라고 묻기조차 민망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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