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의회주의자인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마지막 등원했던 26일, 하늘은 서설(瑞雪)로 그를 맞았다. 고인과 민주화 투쟁을 함께 했던 동지들도, 생전 고인과 협력과 경쟁을 반복했던 정치적 맞수도 한국 정치의 큰 산(巨山)이 역사가 되는 길을 지켜보며 추도했다.
서설이 맞은 YS의 마지막 등원
고인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는 이날 오후 1시 55분께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잔디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정 사진과 전직 대통령에 수여되는 무궁화대훈장 뒤로 휠체어에 몸을 기댄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87) 여사와 두 아들 및 4명의 딸들이 운구행렬을 천천히 선도했다. 국회 잔디광장은 22년 전 고인의 14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던 그 곳이다. 김 전 대통령은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며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에게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하는 파격적인 취임사를 남겼다. 최연소 국회의원, 최다선(9선) 의원, 최연소 야당 총재 등 한국 헌정사에서 유례없는 기록을 쌓은 고인에겐 정치활동의 심장부이기도 하다.
영결식이 시작된 오후 2시부터는 눈발이 더욱 굵어져 고인과의 영결을 슬퍼하는 유족과 동지, 후배 정치인, 시민들의 머리와 상복 위로 쌓여갔다. 세찬 눈발과 영하의 날씨에도 제단과 가장 가까운 좌석의 맨 앞줄에 앞은 유족들은 행사 내내 비통한 표정을 지은 채 꼿꼿이 자리를 지켰다. 손 여사의 왼쪽에 자리한 정의화 국회의장, 양승태 대법원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5부 요인과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등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행사를 지켜봤다.
백발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은 모자를 눌러쓴 채 주위의 부축을 받으며 비통한 표정으로 영결식장에 들어섰다. 그는 ‘좌(左)동영 우(右)형우’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로 고인의 최측근이자 오른팔이었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김덕룡 전 의원 등 ‘상도동계’ 인사들과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한광옥ㆍ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옥두ㆍ이훈평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평생 동지’ 김수한, 눈물로 ‘작별인사’
조사와 추도사는 고인이 평생 이루려 투쟁했던 민주화의 계승과 의회주의자였던 고인의 유지인 통합과 화합의 실현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평생의 동지였던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다 끝내 흐느끼고 말아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김 전 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섬긴 진정한 문민 정치가였다”며 “그렇게 사랑하던 조국과 국민, 동지를 남기고 홀연히 가셨느냐”고 애통해했다. 이어 “민의의 전당 국회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회를 포기하지 않던 김 전 대통령의 의회 존중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며 “많은 동지들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정치를 바로 세우고 임께서 염원하시던 상생과 통합, 화해, 통일의 나라를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도사 막바지, “고 김영삼 전 대통령님 참으로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다.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울음을 터뜨리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생전 고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85년 2월 가택연금 당시 “날 감금할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는 민주주의의 길을 전두환이가 뺏지는 못해”라고 외치는 고인의 음성이 영결식장에 울려 퍼졌다. 내내 입을 다문 채 감정을 누르던 차남 현철씨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하더니 헌화와 분향 때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았다. 고인을 37년간 수행한 김기수 수행실장 역시 영결식 내내 눈물을 훔쳤다.
영결식은 YS의 종교인 개신교를 시작으로 불교, 천주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과 YS가 생전에 즐겼던 노래 ‘청산에 살리라’ 등 추모공연에 이어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조총(弔銃) 21발 발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정치권 “고인 뜻 계승” 다짐
영결식이 끝난 뒤 정치권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다짐했다.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후배로서 김 대통령의 뜻을 완수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도 “김 전 대통령이 온몸으로 싸워 이룬 민주주의가 다시 흔들리고 역사가 거꾸로 가는 상황”이라며 “민주주의의 실현은 후배들에게 남겨진 몫”이라고 강조했다. 1993년 YS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고인이 우리에게 남긴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살려 그의 발자취대로 담대한 용기를 갖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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