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 스님은 한국 불교의 핵심적인 가치를 대표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전 송담 스님이 탈종했을 때는 침묵하던 사회가 외국인인 현각 스님이 한국을 떠나겠다고 하자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한국 불교가 죽었다는 선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이자 서울대불자교수모임 불이회 회장을 맡고 있는 우희종(58) 서울대 수의학 교수는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본보와 만나 최근의 현각 스님 사태와 관련해 “한국 불교가 지키고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가치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른불교재가모임은 한국불교의 본연인 선수행의 상징적 존재이던 송담 스님이 90세에 가까운 나이에 탈종한 이후, 청정하고 자비로운 한국 불교의 본 모습을 회복하고자 결성된 단체다. 창립 이후부터 줄곧 조계종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종단으로부터 해종세력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울 신촌 봉원사 인근에 살며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했던 우 교수는 서울고 재학 시절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불교반 활동을 시작했다. 20여년 전 전남 순천시 송광사 현전 스님에게서 ‘무(無)’를 화두로 받고 참선에 정진해 여산(如山)이란 법명을 얻었다. 불교 경전을 일상과 접목해 가르치는 강의도 종종 한다. 우 교수는 “종단의 미움을 사더라도 누군가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
현각 스님의 조계종 비판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큰 만큼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외국인 승려로서 한국 불교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비판이다’ ‘하버드 출신으로 조계종 내에서 25년간 특별한 대우를 받아오다 갑자기 비판의 글을 남기고 떠난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등의 반론이 있다.
우 교수는 이런 반론이야말로 현재 조계종 내부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25년간 혜택을 받고 지내다 비판하는 걸 놓고 배은망덕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조폭의 관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혜택을 받았으니 조직 내의 문제점에 대해 침묵하라고 하는 건 수준 낮은 비판입니다. 수혜자일수록 자기 집단을 바로잡으려고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요.”
외국인 스님이 한국 문화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우 교수는 “외국인이든 파계승이든 어린아이든 지적한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 먼저 판단해야 하는데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모른다고 비난하는 건 순서가 틀렸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불교가 개인의 복이나 깨달음을 중시하는 기복신앙으로 전락했다는 현각 스님의 말에도 적극 공감했다. 종교의 출발에 개인 기복이 있다는 걸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단의 기득권층이 기복신앙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모든 종교가 개인의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제대로 된 종교라면 신앙의 성숙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타적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회향(자기가 닦은 공덕을 자신이나 중생에게 널리 베풀어 깨닫도록 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조계종 권력 집단은 반쪽 불교만 가르치며 신도들이 자기들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기복신앙에 머무는 문화는 결국 특정 성직자 계급의 특권이나 권익을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총무원장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 보니 종단 내 계파 싸움이 심하고 종교적 특성 때문에 사찰 재정이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우 교수는 “사찰 재정의 투명화가 첫 번째 대안일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주체적인 신도회의 감시가 필수적이다. 그는 “국가지원금이든 신도들의 돈이든 제대로 쓰이려면 신도들이 능동적으로 사찰 재정에 참여하도록 해 투명한 감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우 교수는 “결국 부처님 말씀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계종에는 순수한 열정을 갖고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려는 젊은 승려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종단의 권력을 가진 세대와는 다를 겁니다. 그들이 지금의 잘못된 체제에 문제의식을 갖고 공부해 나간다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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