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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朴피아 3인방’의 황당한 코미디

입력
2014.10.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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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국감 불려 나온 김성주 총재

곽성문, 자니 윤도 대놓고 친박 과시

박근혜 식 ‘보은인사’새로운 적폐

‘국감 뺑소니’ 논란을 일으킨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어제 국감에 뒤늦게 출석했다. 그는 의원들의 질타에 “공인을 해본 적이 없어 잘 몰라서 그랬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국감보다 더 국익에 중요한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라고 했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행명령장 발부라는 엄포에 일단 예봉은 피하고 보자는 심산인 듯하다. “잘 몰랐다”는 말도 실은 사과가 아니라 동행명령을 거부하면 국회 모욕죄로 5년 이하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김 총재가 국감에서 난타를 당한 날은 공교롭게 적십자사 창립 109년 기념일이다. 생일 날 수장의 이런 모습을 본 적십자사 직원들은 “도저히 부끄러워 못살겠다”며 김 총재의 사퇴를 촉구했다. “적십자사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자긍심에 손상을 입었다”는 직원들의 원성에는 자격 미달 논란도 담겨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이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적십자사의 수장으로 어울리는지는 논외로 치자. “나는 영계를 좋아한다” “여성은 약점이나 조금만 한계가 있으면 다 눈물 찔찔 흘리고 남자 탓하고 도망간다” “식민지배는 일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는 등의 막말성 발언도 부차적이라 하자. 하지만 적십자회비 납부실적이 전혀 없는 데서 드러나듯 그 동안 적십자사 활동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사람이 총재라는 건 난센스 중에 난센스다.

김 총재가 국민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무시하고 오만하게 행동하는 데는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이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그레이스 언니”라 부르며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보답으로 공직을 하사한 대통령만 안중에 있을 뿐이다.

(왼쪽부터)김성주, 곽성문, 자니 윤
(왼쪽부터)김성주, 곽성문, 자니 윤

곽성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장의 자기소개서 소동에서도 친박 낙하산들의 천박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MBC기자 시절 인터뷰를 통해 인연을 맺어 박근혜 대표의 측근이 됐고 의원 시절 내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는 소개서는 영락없는 새누리당 공천 신청서다. “친박 의원님들이 지원하라고 해서 했다”며 스스로 친박 낙하산임을 자랑스럽게 고백하는가 하면, “공직을 맡으면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까지 했다. 공공기관 수장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윤리의식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된 방송인 자니 윤의 자기소개서는 친박 낙하산 코미디의 결정판이다. “대통령님의 국정철학과 관광공사 사장님의 경영방침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말에는 실소가 저절로 나온다. 공기업 부정부패를 감시해야 할 감사 업무가 뭔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재무제표를 제대로 볼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팔순을 앞둔 원로 연예인이 임명된 이유는 오직 그가 박근혜 캠프 재외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는 것 하나다. 전문성과 능력이 없는 인사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가장 큰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후에는 관피아 척결을 약속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달까지 132개 공공기관에서 205명의 친박 인사가 낙하산으로 임명됐다. 이게 끝이 아니라 연내에 교체될 100여 개 공공기관 고위직 자리를 친박 인사들이 대거 차지할 거라는 관측이다.

역대 정부 어느 때도 낙하산은 있었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중심제가 유지되는 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정부처럼 거센 사회적, 정치적 비판에 개의치 않고 무차별로 낙하산 투척을 계속하지는 않았다. 과거 군사정권도 군 장성 출신을 공기업에 내려 보낼 때는 비교적 전문성이 덜 요구되는 자리를 택하는 양심은 있었다. 아무리 낙하산이라 해도 최소한의 전문성과 자질이 필요하다. 공기업 사장에 무능력자들을 앉혀놓고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다그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관피아도 문제지만 이제는 ‘박피아’가 더 문제가 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새로운 적폐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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