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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기자

등록 : 2018.01.18 14:15
수정 : 2018.01.18 18:33

[북 리뷰] 선물 받은 삶을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 ‘존엄사 선행학습’

등록 : 2018.01.18 14:15
수정 : 2018.01.18 18:33

의대 교수가 쓴 ‘의료집착 비판’

“한국사회는 생명 연장만 관심

어떻게 죽을지는 논의 안 해

의료계는 방어진료 치중하고

정부는 호스피스에 무관심”

중환자실에서 여러 개의 호스를 꽂고 누워 있는 환자.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저서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에서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하게 되는 한국의 사회, 문화적 배경들을 짚는다. 글항아리 제공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허대석 지음

글항아리 발행ㆍ256쪽ㆍ1만4,000원

마흔 세 살의 남자에게 위암 진단이 내려졌다. 뼈와 폐까지 번져 수술은 이미 불가능한 상태.

항암제에 내성이 생기자 통증이 시작됐다.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 받는 가운데 늑막에 물이 고여 호흡조차 어려워지자 그는 치료를 포기했다. 한때 호스피스 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그는 자신이 보낸 사람들처럼 평안하게 최후를 맞겠다고 했다.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부모, 아내, 딸은 너무 젊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속적인 치료를 주장한 이유 가운데 “나중에 한이 될 것 같아서”도 있었다. 그도 “그만두겠다”는 말을 끝까지 하진 못했다. 항암제가 계속 투여됐고 암 진단을 받은 지 19개월 만에 그는 사망했다. 가족들은 침통해하면서도 의사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다음달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 시행된다. 임종기의 환자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연명의료를 시행할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존엄사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에 성큼 다가섰다. 때맞춰 출간된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의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은 존엄사에 대한 일종의 선행학습서다. 죽음에 관해선 끝까지 방어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모르는 한국사회를 향해, 저자는 ‘잘 죽는 법’에 대해 말한다.

“더 이상 항암 치료에 반응하지 않아 말기 상태라고 이야기하면, 환자와 가족은 ‘얼마나 더 살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잔여 생명의 기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어떻게 임종을 준비하면 좋을지를 의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30여 년 간 서울대병원 교수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저자는 국내 의학계의 대표적인 존엄사 지지자다. 국내 호스피스와 완화 의료 제도화를 위해 1998년 한국 호스피스ㆍ완화의료학회 창립에 기여했으며,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책에 따르면 매년 사망자 28만 여명 중 약 21만명이 집이 아닌 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저자는 병원이 사람을 치료하는 곳인 동시에 임종을 치르는 곳이 되었다면,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것만큼 보내는 일에도 능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죽음의 현장에서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의사가 회생불가능한 환자에게서 호흡기를 떼어낼 때 그것을 지켜보는 사회는 어떤 표정을 지어왔는지, 법은 어떤 판단을 내렸고 언론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허 교수는 꼼꼼히 짚는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뇌수술을 받은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게 되자 그의 부인은 남편을 퇴원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의사는 퇴원하면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고 알렸지만 보호자는 퇴원을 강행했고 환자가 사망하자 보호자에겐 살인죄가, 담당의사에게는 살인방조죄가 적용돼 실형이 선고됐다.

좋은 삶이란 말만큼 좋은 죽음이란 말도 중요하다. 허대석 교수는 한국인들 상당수가 자신이 원하는 임종을 맞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허 교수는 한국사회의 ‘의료 집착’을 과감히 비판한다. 생명을 살리는 치료와 달리 의료는 단순히 생명이 붙어 있는 기간을 연장하는 행위까지 포함하는데, 이 둘을 헷갈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무지 때문만은 아니다. 살인방조죄를 피하기 위한 의료계의 방어 진료, 중환자실 이용 부담은 줄이면서 호스피스 지원은 신경 쓰지 않는 정부, 삶의 질에 익숙하지만 죽음의 질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여기에 연명도구의 급속한 발달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의 중환자실은 악몽이 되어가고 있다. 저자는 몸에 여러 개의 관을 꽂은 환자들로 즐비한 대형병원과 낙후한 시설에서 자원봉사자들에 의존하는 호스피스 기관을 비교하며 묻는다. “오늘날 한국의 병원은 과연 누구를 위한 곳일까?”

그렇다면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는 다음달에 이 모든 문제는 사라질까. 허 교수는 법이 말하는 임종기의 구분이 모호하고, 서식이 지나치게 복잡하며, 환자 본인의 결정권만 너무 강조돼 있다는 점을 들어 법안을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식의 변화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죽음은 ‘끝까지 안 죽기’다. 생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환자에게 “연명 의료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희망적 의미”를 포기하라고 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스펙터클 앞에서 모든 합리와 이성이 마비되도록 방치하는 게 늘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저자는 2013년 7월 타계한 미국의 작가 제인 로터의 얘기를 들려준다. 그는 암으로 사망하기 전 지역 신문 시애틀 타임스의 유료 부고란에 직접 자기 부고를 보냈다. 작가로서 쓴 마지막 글은 남편과 딸 등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 뒤 이렇게 마무리된다. “나는 삶이라는 선물을 받았고, 이제 이 선물을 되돌려주려 한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30년 간 의료 현장에서 무수한 죽음을 겪었다. 1998년 한국 호스피스ㆍ완화의료학회 창립에 기여했으며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글항아리 제공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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