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호 기자

등록 : 2017.05.17 22:40
수정 : 2017.05.18 00:54

“터널 빠져 나온듯” 감회에 젖은 광주

등록 : 2017.05.17 22:40
수정 : 2017.05.18 00:54

“촛불 아니었다면 올해 5ㆍ18도 푸대접

임을 위한 행진곡 당당히 부르게 돼 기뻐”

5·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려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마치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기분이여. 이제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동안 너무 힘들었잖아….”

5ㆍ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금남로. 시민들의 주먹밥 나눔 현장에서 만난 5ㆍ18 유족 이귀임(78)씨의 표정엔 흐뭇함이 묻어났다. “저 젊은 사람들이 들었던 촛불이 아니었다면 올해 5ㆍ18도 푸대접을 받을 거야.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임을 위한 행진곡’도 당당하게 부를 수 있게 돼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 5ㆍ18진실규명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돼 기뻐.” 그간의 설움을 토해내듯 말을 이어가던 그의 주름진 두 눈가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다시 ‘5ㆍ18’을 맞은 광주가 모처럼 밝아졌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거짓말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부활한 덕분이었다. 광주시민들은 “이제야 맘놓고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지난 8년간 이 노래는 광주시민들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종북 굴레를 뒤집어쓰면서 5ㆍ18기념식은 ‘상주(喪主)’도, ‘제주(祭主)’도 없이 ‘손님들’로만 치러지기 일쑤였다. 대통령 기념사는 부총리 기념사로 격하되기도 했고, 5ㆍ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5ㆍ18을 맞는 광주시민들의 감회는 예전과 다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비로소 5ㆍ18을 제자리에 바로 세워 놓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회사원 이진만(48)씨는 “새 정부 출범 이후 5ㆍ18기념식이 역대 최대 규모로 거행되는 등 제 위상을 되찾으면서 5ㆍ18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도 많이 바뀔 것”이라며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5월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남달라 보여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는 5ㆍ18의 진실규명이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날 저녁 5ㆍ18전야제가 열린 금남로와 옛 전남도청 앞 5ㆍ18민주광장은 수만 명의 시민들로 가득 찼다. 오후 8시부터 열린 전야제에서 시민들은 지난 8년간 억눌러왔던 감정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임을 위한 행진곡’을 끊임없이 불렀다.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을 되살려내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도 펼쳐졌다.

국립 5ㆍ18민주묘지를 찾는 참배객들도 부쩍 늘면서 이달 들어 이날 현재 전국에서 약 20만 명이 참배했다. 김영배(88)씨는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찾은 전야제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그간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 홀대를 받으며 응어리졌던 마음이 확 풀렸다”고 웃었다.

그러나 새 정부가 과거 정부처럼 5ㆍ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추혜성(61)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5ㆍ18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임기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며 “제발 이번 정부와 정치인들도 5ㆍ18을 이념싸움과 편가르기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고 5ㆍ18 왜곡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진실규명 작업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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