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허재경 기자

등록 : 2017.11.21 15:32
수정 : 2017.11.22 19:08

세계 평정한 바둑여제 “남녀 통합 기전 우승이 목표”

등록 : 2017.11.21 15:32
수정 : 2017.11.22 19:08

中 궁륭산병성배 바둑대회 등

올 세계대회 싹쓸이한 최정 8단

“작년 남자와 대결해 본선 진출

최고 성적표지만 아직 배고파”

최정 8단이 21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국가대표실에서 바둑을 두며 포석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 세계여자바둑대회를 싹쓸이 우승한 그의 목표는 남녀 통합기전 우승이다. 서재훈 기자

외모는 영락없이 앳된 소녀다. 화장기 없는 생기발랄 미소에선 승부사 기질을 찾긴 어렵다. 여러 치열했던 반상(盤上) 전투에서 내로라하는 상대들에게 항복을 받아 낸 선수로 보이지도 않는다.

21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프로바둑기사 최정(21) 8단의 첫인상은 그랬다.

하지만 최 8단은 올해를 최고의 한 해로 장식했다. 지난 10일 중국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에서 개인전 우승을 한 그는 앞서 단체전으로 열린 황룡사 정단기배와 천태산 농상은행배, 명월산배 5도시 여자바둑쟁탈전에서 모두 정상에 등극, 올해 세계여자바둑대회를 싹쓸이했다. 특히 궁륭산병성배 우승은 위즈잉과 왕천싱, 리허 등 중국 랭킹 1~3위를 잇따라 격파하면서 가져온 값진 결과다. 덕분에 지난 2013년 12월에 오른 최 8단의 국내 여자 프로바둑기사 랭킹 1위 기록도 현재까지 철옹성처럼 굳어진 상태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듣고 나서야 궁륭산병성배 우승 의미를 알았어요. (경기를) 잘 마무리해서 다행입니다.” 겸손해했지만 최 8단의 성과는 작지 않다. 그동안 열세였던 한중 여자바둑 대결의 무게 중심을 확실하게 한국 쪽으로 옮겨왔다는 평까지 받았다. 일본 바둑이 한국과 중국에 비해 열세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세계 여자 바둑계의 주도권을 가져온 셈이다.

명실공히 세계 여자 바둑계 1인자로 올라섰지만 사실 최 8단의 바둑 입문은 우연하게 시작됐다. 노후에 함께 할 취미를 찾았던 부친이 일곱 살배기 딸을 바둑학원에 보냈는데, 이곳에서 숨겨졌던 최 8단의 바둑 재능이 발견됐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집중력이 좋고 수읽기 능력이 뛰어나다. 단순히 취미로 즐기기엔 아까운 기량이다”라는 평가로 딸의 바둑 실력을 확인한 부친은 곧바로 당시 살던 광주에서 서울과 분당 등으로 이사다니며 새 스승인 유창혁 9단에게 배웠다.

최정(맨 오른쪽) 8단이 지난 10일 중국에서 열린 궁륭산병성배 세계 여자바둑대회 결승에서 왕천싱 5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1990년대 세계 바둑계를 풍미했던 유 9단은 일본 후지츠배(1993년)와 응씨배(1996년), 삼성화재배(2000년), 춘란배(2001년), LG배 세계기왕전(2002년) 등까지 차례로 우승하면서 세계 바둑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국내 바둑계 간판 스타였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도 없었을 겁니다. ‘한 번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되지 않겠느냐’며 밀어준 아버지의 응원이 절대적이었어요.”

정상에 섰지만 가시밭길도 있었다. 무엇보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때부터 승자와 패자만이 있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무조건 이기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그랬어요. 어정쩡한 중간은 용납되지 않았거든요. 혼란스러웠습니다.”

최 8단은 어릴 때부터 바둑판 밖에서조차 가치 판단 기준을 모두 이분법적으로 나눠 살아야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고 토로했다. 그가 고교 1학년 때까지 다녔던 학업을 멈춰야 했던 이유도 결국 승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간직한 학창시절의 추억 또한 포기해야만 했다.

많은 걸 희생한 탓일까. 최 8단은 남녀 경계선을 넘어서 확실한 족적을 남기고 싶어했다. 각종 여자 바둑기전에서 수많은 우승을 경험한 최 8단이 지난해 쟁쟁한 남자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2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 진출까지 성공한 LG기왕전을 생애 최고 성적표로 꼽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며 제시한 그의 목표도 분명했다. “‘태양을 향해 쏜 화살이 가장 멀리 날아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남녀 통합기전 우승을 향한 최 8단의 집념은 이미 그의 반상 행마(行馬)를 재촉하고 나섰다.

허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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