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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걸그룹' 시간을 달려서 소녀시대 넘보다

입력
2016.02.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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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여자친구는 10개월 동안 데뷔곡인 ‘유리구슬’의 안무를 연습했다. 약 20분 동안 3곡을 연달아 틀어놓고 쉬지 않고 춤을 췄다. ‘파워 칼군무’의 비결이다. 쏘스뮤직 제공
걸그룹 여자친구는 10개월 동안 데뷔곡인 ‘유리구슬’의 안무를 연습했다. 약 20분 동안 3곡을 연달아 틀어놓고 쉬지 않고 춤을 췄다. ‘파워 칼군무’의 비결이다. 쏘스뮤직 제공

가수 안치환을 좋아한다는 김종진(58)씨는 최근 휴대폰 연결음을 걸그룹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로 바꿨다. 지난해 1월 공개된 여자친구의 데뷔곡 ‘유리구슬’을 듣고 노래가 좋다는 생각만 하다 지난달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에 나온 멤버들을 보고 “애들답게 예뻐” 푹 빠졌다고 했다.

걸그룹 여자친구가 세대를 뛰어 넘는 인기를 얻으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요즘 가요계는 ‘여자친구 천하’다. 여자친구는 지난달 25일 낸 새 앨범 ‘스노우 플레이크’ 타이틀곡 ‘시간을 달려서’로 SBS ‘인기가요’ 등 방송사 5개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이 21일까지 음악방송에서 거머쥔 트로피는 총 12개다. 지난해 ‘라이언 하트’ 하나로 걸그룹 가운데 음악방송에서 최다 1위를 차지한 소녀시대의 트로피 수와 같다. 신곡을 낸 지 3주가 지난 22일에도 멜론과 올레뮤직 등 주요 음원사이트의 일간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여자친구의 기록 행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자친구가 지난해 7월 낸 ‘오늘부터 우리는’ 도 음원 차트 톱10에 뒤늦게 오르며 ‘역주행’ 중이다. 여자친구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져 사람들이 이들의 옛 노래까지 찾아 듣고 있는 것이다.

교복과 체육복만…섹시 걸그룹 잡은 ‘청순돌’

“아주 평범했어요.” 걸그룹 S.E.S.와 가수 비 등 여러 아이돌과 작업했던 안무가 박준희가 들려준 데뷔 전 여자친구에 대한 첫인상이다. 지난해 여자친구의 데뷔를 도우면서도 너무 평범해 “이렇게 뜬 게 기적 같은 일”이라는 그의 말이 무리는 아니다. 6인조로 구성된 여자친구에는 소녀시대의 윤아 같이 남성 팬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 잡는 미모를 지닌 멤버도, 2NE1의 씨엘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멤버도 없다. 화려함 대신 여자친구가 내세운 건 풋풋함이다. 여자친구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고생 이미지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를 위해 무대 의상도 데뷔 후 줄곧 체육복과 교복을 고집했다. 뮤직비디오도 입학(‘유리구슬’)과 방학(‘오늘부터 우리는’) 그리고 졸업(‘시간을 달려서’)으로 이어지는 학교 3부작으로 촬영해 청순함이란 한 우물만 팠다.

평범한 듯 보이는 청순 걸그룹 콘셉트는 최근 3~4년 사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섹시 걸그룹의 범람과 맞물려 오히려 ‘약’이 됐다. 직장인 홍은혁(43)씨는 “노출을 내세운 다른 걸그룹과 달리 여자친구는 소녀시대 데뷔 시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정이 갔다”고 말했다. 록 음악 기반의 경쾌한 댄스곡을 주력 장르로 내세워 청순함에 건강함을 더한 것도 인기 비결 중 하나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여자친구의 노래들은 1990년대 유행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속 음악 스타일과 비슷해 중년층에겐 향수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걸그룹 여자친구는 신곡 '시간을 달려서'로 지난 5일부터 22일까지 19일째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에서 일간 차트 1위를 기록했다. 416시간 째 '롱런'으로, 올해 최장 기록이다. 미쓰에이의 수지와 엑소의 백현이 부른 '드림'은 같은 차트에서 14일 동안 1위에 올랐다. Mnet 제공
걸그룹 여자친구는 신곡 '시간을 달려서'로 지난 5일부터 22일까지 19일째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에서 일간 차트 1위를 기록했다. 416시간 째 '롱런'으로, 올해 최장 기록이다. 미쓰에이의 수지와 엑소의 백현이 부른 '드림'은 같은 차트에서 14일 동안 1위에 올랐다. Mnet 제공

‘환풍기 수리공’ 허각 연상케 하는 인생 역전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성장기는 여자친구를 스타덤에 올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여자친구는 지난해 9월 유주가 빗속 무대에서 8번이나 넘어지고도 끝까지 노래를 부른 모습이 담긴 일명 ‘꽈당 직캠(팬이 찍은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후 여자친구의 내세울 것 없는 ‘출신 성분’이 더해지면서 그룹에 대한 호감은 더욱 커졌다. 여자친구는 직원 5명에 서울 논현동의 한 건물 지하2층에 사무실을 둔 작은 기획사 쏘스뮤직 출신이다. SM과 JYP, YG 같은 대형 기획사의 후광 없이 고군분투하며 일어서려는 여섯 소녀의 모습에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며 팬을 자처한 것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흙수저 걸그룹’에 대한 응원이 여자친구 인기의 바탕이 된 셈이다. KBS2 음악프로그램 ‘뮤직뱅크’의 김상미 PD는 “대형 기획사의 대대적인 마케팅 지원 없이 데뷔 1년 만에 여자친구처럼 인지도를 쌓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워낙 살기 어렵다 보니 청년들 사이 수저 계급론이 화두인데 여자친구를 보고 많은 이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팬 층이 확 넓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팬들도 여자친구의 매력으로 주저 없이 “노력”을 먼저 꼽는다. 대학원생인 김기석(30)씨는 “여자친구를 보면 환풍기 수리공출신으로 오디션 스타가 된 허각이 떠오른다”며 “‘시간을 달려서’ 2배속 연주에 맞춰 칼군무를 추는 영상을 보고 얼마나 노력했으면 이란 생각이 들어 ‘입덕’(팬이 된다는 뜻)했다”며 웃었다.

가요계 관계자들 사이에도 여자친구는 ‘성실돌’로 통한다. Mnet ‘엠카운트다운’을 연출하는 김정범 PD는 “여자친구는 드라이리허설 때도 무대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고 귀띔했다. 사복을 입고 편안하게 연습하는 게 드라이리허설인데, 이때도 여자친구는 무대 의상을 입고 실전처럼 연습에 임한다는 설명이다.

여자친구 전성시대 ‘4세대 아이돌’ 의 출범

여자친구가 대세로 떠오르며 걸그룹은 세대교체를 맞는 분위기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여자친구를 “4세대 아이돌의 시작”이라고 봤다. 4세대 아이돌은 여린 요정 이미지가 강했던 1세대 S.E.S.와 핑클보다 힘차고(여자친구는 무대에서 파워풀한 뜀틀 안무를 선보인다), 한류 전성시대를 이끌어 스타성이 돋보였던 2세대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와 비교해 친근한 게 특징이다. 섹시함을 전면에 내세운 3세대 A.O.A.와 씨스타보단 청순한 매력이 도드라진다. 여자친구와 2014년 먼저 데뷔해 인기 몰이중인 러블리즈 등이 대표적인 4세대다.

데뷔 초 여자친구는 지난 2007년 소녀시대가 선보였던 ‘다시 만난 세계’의 답습이란 비판을 받는 등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으나 4세대 아이돌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걸그룹의 잃어버린 청순함에 대한 (팬들의)갈망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섹시한 걸그룹이 쏟아지면서 피로도가 쌓여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자친구 같은 4세대 걸그룹이 인기를 얻는 것이란 설명이다. 여자친구의 결성을 주도한 소성진 쏘스뮤직 대표는 “걸그룹의 오랜 생명력을 위해선 청순 콘셉트로 가야한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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