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고공농성 309일, 희망버스…
사회적 갈등만 치르고 구조조정 실패
결국 수천억 적자로 채권단 관리
나아지기는커녕 시간만 낭비한 셈
노조, 구조조정 현실 받아들이고
대주주-경영진도 부실 책임져야
‘2014년 2,998억원 적자, 2015년 2,609억원 적자.’
5년 전 무려 309일 동안의 크레인 고공 농성과 ‘희망버스’ 논란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한진중공업의 최근 2년 간 경영 실적이다. 회사측이 정리해고 근로자 92명을 복직시키면서 사태가 일단락된 지 3년여가 지났지만 한진중공업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영도조선소는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수주 급감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회사는 결국 지난 1월 채권단 공동관리를 신청했다.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치르고도 다시 원점인 셈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1937년 지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식 조선소다. 그러나 부지가 협소해 경쟁력이 떨어지자 2010년12월 생산직 근로자 400명을 희망 퇴직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는 당시 전체 노조원(약 1,200여명)의 30% 규모였다. 노조는 곧바로 총파업에 돌입했다. 특히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출신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2011년1월 영도조선소의 35m 높이 크레인에 오르며 사건은 정치적 문제로 바뀌었다. 그 해 6월부터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희망버스의 집회가 이어지며 정치인들까지 가세했다. 이런 저런 주문이 많았지만 지금 한진중공업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최근 채권단은 영도조선소 상선 부문을 결국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옮기기로 했다. 5년이란 시간만 낭비한 꼴이다.
조선업과 해운업 등 한계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한진중공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측의 일방통행식 구조조정도 문제지만 개별 기업 문제에 외부 세력이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정치적 논리로 풀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실제로 5년 전 한진중공업이 직면했던 상황을 이젠 조선업 전체가 맞닥뜨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가 지난해 8조5,000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하청업체까지 포함하면 모두 2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한진중공업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후폭풍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노사 모두 현실을 인정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고통을 분담하는 합리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우리 경제를 이끌던 주요 산업 전반이 부실화한 만큼 구조조정과 해고 등 인력조정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기업은 우선 해고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노조도 과거 같은 고용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구조조정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대주주와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한진중공업 사태 때도 정작 지주회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는 적자 상태였던 2012년 조남호 회장에게 34억원의 고배당을 실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히 개별 기업 구조조정과는 상관없는 외부 세력의 과도한 개입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한 경제 단체 관계자는 “한진중공업 사태는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개입이 문제를 해결하긴커녕 오히려 더 꼬이게 한 측면이 강했다”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라고 꼬집었다.
정상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구조조정을 한번에 끝낼 게 아니라 어떻게 피해자를 구제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어떤 성장의 밑그림을 그릴 것인지 미래지향적인 설계부터 해야 한다”며 “장ㆍ차관들이 산업 현장으로 들어가 현재 상황을 공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 보상안들을 내놔야 하는데 지금은 모두들 대통령 눈치만 보느라 바쁘다”고 쓴소리를 했다.
사공진 한양대 교수도 “현재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며 “부작용과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수용 가능한 내용을 담은 합리적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이 현실화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았다. 김 교수는 “해고가 이뤄진다면 사내 하도급 노동자들이 1순위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해고자들의 전직이나 창업을 지원하는 데 예산이 더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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