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회장 행보 외견상 잠행 가까워… 의례적 청와대 방문도 거의 없어
靑 감찰 실제로는 자신을 겨냥… 정씨와 3인방이 배후 판단
“당분간은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겠나. 그렇잖아도 맘고생 심할 텐데 그냥 내버려두면 안되나.”
‘정윤회 문건’ 파문이 확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에게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박 회장과 가까운 여권 핵심인사가 3일 기자에게 전한 이야기다. 정윤회씨와의 갈등설 내지는 권력암투설에 대해 박 회장이 특별히 입장을 밝힐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 정윤회ㆍ3인방과의 갈등은 공공연한 비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박 회장의 행보는 외견상 잠행에 가까웠다. 특별히 눈에 띄는 공개활동 자체가 거의 없었을 정도다. 박 대통령이 이전 정부의 사례들을 감안해 친인척 관리 차원에서 고강도 감찰을 용인했기 때문인데, 이에 따라 박 회장 주변에선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과거 대통령 친인척들의 의례적인 청와대 방문도 현 정부 들어선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다.
특히 박 회장 측은 청와대의 고강도 감찰이 실제로는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견제 차원이었고, 그 배후에 정씨와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ㆍ정호성 제1부속실 비서관ㆍ안봉근 제2부속실 비서관)이 있다고 여겨왔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회장 입장에서는 이들이 박 대통령과 자신의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여권 내에선 박 회장과 정씨가 예전부터 불편한 관계였다는 게 정설이다. 다양한 설이 있기는 하지만, 박 대통령이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탄핵역풍을 뚫고 17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유력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뒤 당시 여권을 중심으로 고 최태민 목사 관련 얘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라는 설이 유력하다. 박 회장이 최 목사의 사위인 정씨가 박 대통령 주변에 있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양측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였다. 정씨가 박 회장을 미행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직접적인 계기였다. 박 회장이 정씨의 지시로 자신을 미행하던 사람에게 자술서까지 받아놓았고, 이 사실을 청와대에 알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내사가 진행되던 중 해당 비서관과 행정관이 사실상 경질되고 내사도 중단됐다는 게 골자다.
정씨가 해당 언론사를 상대로 법정 소송에 돌입한 가운데 최근 정씨의 국정 개입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좀 더 분명해졌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사실상 박 회장 측의 요청에 따라 정씨와 비서관 3인방의 전횡을 견제하려 했던, 글자 그대로 권력투쟁의 단면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일 것”
물론 박 회장도 권력의 한 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왔을 것이란 얘기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박 회장과 육사 37기 동기인 이재수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것을 두고서다. 전임자가 6개월만에 이례적으로 경질됐기 때문이다.
당시엔 남재준 전 국정원장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등 군 출신 권력자들간 힘겨루기의 산물이란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달 이 사령관이 1년도 채 안 돼 전격 경질된데다 최근 정씨와의 권력암투설이 나오면서 해석이 달라졌다. 이 사령관과 국정원 1급 인사 등에서 박 회장 측 인사가 줄줄이 좌천됐다는 얘기를 뒤집어보면 박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일부 인사문제에선 힘을 썼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정씨의 국정 개입 논란이 불거진 뒤 당사자인 정씨와 조 전 비서관은 물론 비서관 3인방도 경쟁적으로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박 회장은 당분간 입을 열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한 친박계 핵심의원은 “박 회장의 평소 언행으로 볼 때 결코 권력에 눈을 돌릴 사람이 아닌데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이 될 만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권 일각에선 박 회장과 정씨가 갈등을 빚는 와중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8월 임명된 임환수 국세청장과 지난달 임명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최 장관의 대구고 후배다. 박 대통령 주변의 쟁쟁한 경제과외교사들을 제치고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에 오른 뒤 최 장관이 알게 모르게 권력의 핵심부를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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