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허재경 기자

등록 : 2018.04.24 18:27

“독거노인 고독사의 진짜 처방전은 일자리죠”

[일터애(愛)ㆍ5] 홀몸노인 도우미 권옥선씨의 조언

등록 : 2018.04.24 18:27

권옥선(오른쪽) 독거노인 도우미가 ‘장애인의 날’인 지난 20일 서울 홍제동에서 독거노인 도순복(가명)씨와 함께 폐지 정리를 하고 있다.

“금방 갈게요, 언니. 아이고, 조금만 기다려 줘요.”

‘장애인의 날’인 지난 20일 오전. 서울 북아현동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을 나선 권옥선(70ㆍ지체장애 4급)씨의 마음은 조급했다.홍제동에 사는 한 독거노인이 폐지 정리를 도와달라며 아침부터 독촉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고 가야 해서, 부지런히 가야 합니다. 이 언니 사는 게 말이 아니에요. 빨리 가서 살펴봐야 하는데….”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면서 복잡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그의 걱정은 다른 곳을 향했다. 권씨의 이날 하루 일과는 약 6.61㎡(2평) 크기의 홍제동 2층 쪽방에 사는 독거노인 도순복(71ㆍ가명)씨의 폐지 정리 도우미로 시작했다.

권씨는 지난해부터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의 독거노인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지체장애로 불편한 몸이지만 매주 2~3명의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하는 그는 홍제동 일대에선 유명인사다.

“요샌 폐지 값도 떨어져 우울하지만 이 동생 목소리만 들으면 힘이 납니다. 요즘 누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상대나 해주나요. 말벗도 해주고, 일도 도와주고, 아픈 곳이 있으면 병원도 알아봐주고. 안마는 또 얼마나 잘 해주는데요. 이만한 사람이 없어요.” 빨리 와달라고 독촉했던 도씨는 서운함 대신 반가운 얼굴로 권씨를 맞았다.

권옥선(오른쪽) 독거노인 도우미가 ‘장애인의 날’인 지난 20일 서울 홍제동 인근의 한 독거노인 자택을 방문, 상담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고관절 탈골로 장애 얻어

7남매 중 장녀로 강원 횡성군에서 태어난 권씨가 장애를 갖게 된 건 예기치 못한 사고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개울가에서 친구들과 싸움이 붙은 동생을 말리던 도중 넘어지면서 고관절이 탈골됐다. “사고 직후, 3년 동안 누워 지냈어요. 학교는 일찍 포기했죠. 그 때부터 제 인생도 꼬였습니다.”

그의 고생은 오른 손목이 없는 가난한 남편을 만난 이후에도 계속됐다. “6ㆍ25 전쟁 당시, 동네에 떨어졌던 폭탄을 잘못 만지면서 남편은 오른손을 크게 다쳤어요. 때문에 식당 허드렛일에서부터 페인트공, 공사판 막노동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가뜩이나 부실한 몸이 더 망가졌어요. 어깨와 쇄골, 무릎, 허리 등 수술만 9번을 했으니까요.” 그는 장애인 부부에게 혹독했던 지난 세월을 이렇게 떠올렸다. 권씨 부부는 어려운 살림에도 1남1녀를 모두 출가시켰다.

‘이젠 장성한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편하게 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부부가 독거노인 도우미 등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이 100만원 안팎입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감사하면서 살고 있어요. 주변을 돌아보세요. 우리 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는 이날 아침에도 집에서 직접 찐 고구마를 복지관 동료들에게 나눠줬다.

권옥선(왼쪽) 독거노인 도우미가 ‘장애인의 날’인 지난 20일 서울 홍제동의 독거노인 이숙자(가명)씨 집을 방문해 안마를 해주고 있다.

독거노인들의 실질적 지원은 ‘일자리’

그의 진정성은 독거노인들에겐 널리 알려졌다. 이날 홍제동에서 3명의 독거노인을 방문하는 골목길을 돌 때마다 마주친 노인들도 한결같이 그에게 먼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독거노인들에게 그의 방문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와주기만 하면 항상 고맙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잘 보여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온다는 연락을 받고 오늘은 화장도 제대로 못했네요.” 홍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숙자(76ㆍ가명)씨는 이날 예정에 없던 권씨의 ‘깜짝 방문’을 반겼다.

약 3시간 동안의 오전 일과를 마칠 무렵, 권씨는 독거노인 관리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근에 잇따라 뉴스에 나오는 독거노인 고독사의 진짜 원인은 ‘외로움’ 이거든요. 이 문제는 정부 보조금 몇 푼으로 해결될 게 아닙니다. 우리 같은 독거노인 도우미를 많이 늘리는 것도 좋겠지만 독거노인들에게 맞춤형 일자리가 주어진다면 고독사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텐데, 많이 아쉬워요.” 독거노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단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권씨는 독거노인 도우미로서의 봉사활동엔 정해진 시간표가 없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면 피곤해서 금방 잠이 들어요.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한,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홀몸노인들을 찾아 갈 겁니다. 누군가 나를 찾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잖아요.”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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