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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정권의 심기 건드린 사람에게 檢은 우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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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정권의 심기 건드린 사람에게 檢은 우군이 아니다

입력
2015.08.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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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팀은 권은희 의원의 거짓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이다.”

굳이 돌려 말할 것도 없다. 19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가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모해위증 혐의로 기소한 것은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물론, 검찰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권 의원을 기소하면서 검찰 관계자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선거 개입 혐의와 관련해) 권 의원의 진술이 유력한 증거이긴 했으나, 그 외에도 다양한 정황 증거가 있었다”고 했다. 얼핏 봐선 특별수사팀이 권 의원 입에만 기댄 것은 아니라고 ‘옹호’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검찰의 수사방식이나 조직 생리를 감안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

일반적으로 검찰 수사에서 핵심 참고인의 진술에 대한 다각도의 검증은 필수 중의 필수다. 더구나 권 의원ㆍ김 전 청장과 관련해 문제가 된 사건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라는, 국기문란 행위에 해당할 정도로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최고의 수사력을 갖춘 검사들로 꾸려진 특별수사팀이 “김 전 청장의 수사축소 외압이 있었다”는 권 의원 주장의 신빙성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서 무작정 믿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런데도 “권 의원이 김 전 청장의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일부러 네 번이나 위증을 했다”는 게 검찰의 최종 결론이라면, 결국 특별수사팀은 검증 노력을 게을리했거나 ‘뻔한 거짓말’을 가려내지도 못한 셈이 된다. 김 전 청장 수사는 ‘헛발질’이었음을 검찰 스스로 자인한 꼴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이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비판을 감수하고 권 의원을 기소한 게 ‘고해성사’처럼 여겨지진 않는다. 돌이켜 보면 혼외자 파문으로 채동욱 전 총장이 낙마하고 김진태 총장이 취임한 이후,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선 유난히도 소극적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1심에서 무죄 선고됐을 때, 검찰은 침묵만 지키다 항소 기한 마지막에 떠밀리듯 항소장을 냈다. 이번에도 검찰은 권 의원과 진술이 엇갈렸던, 또는 법정에서 검찰 조사 때의 진술을 뒤집은 경찰관들의 위증 가능성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검찰은 자신들의 수사 결과에 흠집을 내면서라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내부고발자인 권 의원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이로써 권 의원의 진술을 믿었던 특별수사팀 검사들은 카운터펀치를 맞은 셈이 됐다. 정권의 심기를 건드린 이들에게 ‘우군’은 검찰에 없다는 현실을 다시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김정우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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