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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3000개와 9년간 씨름..무릎 탁 치는 희열”

입력
2016.12.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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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절대지식' 의 저자 김승용씨는 "제가 찾아간 답을 통해 독자 분들도 나름의 답을 찾고 무릎을 탁 치는 희열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우리말 절대지식' 의 저자 김승용씨는 "제가 찾아간 답을 통해 독자 분들도 나름의 답을 찾고 무릎을 탁 치는 희열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후회요? 맨날 했어요. 내가 왜 이걸 정리하려 들었을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을 쓸 때 최소 몇 달을 고민했어요. 지나칠 만큼 친절한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진짜 무식할 정도로 용감한 계획이었죠.”

김승용씨가 ‘우리말 절대지식’을 완성하는데 들인 시간은 만 9년이다. 속담 해석 사전의 형식을 취했지만, 교양서이자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속담을 잘게 쪼개 구성원리를 탐구하고 쓰임새를 고민하는 등 문화, 사회, 역사적 배경 등을 집요하게 찾아 적었다. ‘항우도 댕댕이덩굴에 걸려 넘어진다’는 왜 하필 다른 풀 대신 댕댕이덩굴인지, 왜 하필 주막집 개 대신 ‘서당집 개’가 속담 주인공이 됐는지 집요하게 고민했다. 꽁무니, 당상, 홍두깨처럼 상투적으로 쓰는 말의 본 뜻은 자세히 풀고 사진도 직접 찍어 첨부했다

이렇게 끈덕지게 퍼즐을 맞춘 속담이 3,000여 개다. 심사위원들이 “모든 이의 책장에 한 권씩!”을 외쳤다는 얘기에 김씨는 손사래를 친다. “어쩌다 취향이 맞아 좋게 봐 주신 거겠죠. 언젠가 한 번 책으로 내보고 싶단 생각은 했는데, 사실 제 성격 문제였어요. 궁금한 게 뭔가 안 풀리면 끝까지 뒤통수에 남아 있거든요.”

국문학 전공자인 김씨는 프리랜서 편집자로 책을 만들어 왔다. 2007년 속담 ‘재미나는 골에 범 나온다’의 뜻을 찾아 헤맸지만 시원스런 설명을 찾지 못해 “화가 난” 것이 연구 착수의 계기다. 기존 사전 수록 속담 중 빈도 수가 높은 것 3,000여 개를 추려 차근히 채워나갔다. 그는 “책, 인터넷 등 자료 조사도 하지만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면 답이 안 나오니 물건을 직접 보기 위해 박물관이든 산이든 들이든 돌아다녔다”며 “댕댕이덩굴을 찾아 한참을 헤맸는데 근처 북한산에서 발견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얼마나 걸릴 줄은 몰랐고 가는데 까지 가보자 했는데, 속담을 사랑하게 됐어요. 그냥 머리 속 한 켠에 넣어두고 있으면 갑자기 생각지 않은 순간에 불이 켜지기도 하고, 단초가 발견되면 정신 없이 머리 속이 돌아가기도 하고. 제 재능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 있잖아요.”

김씨의 사전에는 현대사전도 담겼다. ‘갈수록 태산’의 현대적 표현은 ‘월급 빼고 다 오른다’를 적어 넣고, ‘다 된 농사에 낫 들고 덤빈다’에는 ‘남의 신용카드에 자기 적립카드’를 써 붙였다. 유행어라고 다 현대사전 자격을 갖는 건 아니다. 운율이 있고, 대구를 이뤄야 한다. ‘싸가지가 바가지가’,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가 대표적이다.

자신을 메모광, 정리광으로 부르는 김씨는 “그간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던 걸 채워나가는 작업이 즐거웠다”며 “저나 사랑하는 속담, 요즘에 누가 이런걸 사랑해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그간 가려운 곳 긁어줄 사람이 없었던 걸 뿐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다음 책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다. “문지방 밟지 말라던가 하는 미신과 터부들,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는 이 책이 사전이라기 보다는 ‘사전 답사기’로 읽히길 바란다. “속담이 요즘엔 암호나 화석처럼 돼 버렸지만, 사실 삶의 폭죽 같은 깨달음의 이야기고 지혜가 압축된 파일이고 한 나라 레토릭의 총체잖아요. 제 답이 정답인 건 아니니, 책을 통해 독자 분들도 속담을 곱씹다 무릎을 탁 치는 희열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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