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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이슬람 내부 전쟁에서 한쪽 편들기

입력
2016.04.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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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최근 “지하디즘(이슬람 근본주의자 무력투쟁)을 정당화할 어떤 변명도 옳지 않다”고 했다. 그가 옳았다. 발스 총리는 이어 “지하디스트의 충동적 행동을 문화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유혹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4월 4일 발스 총리는 또다시 지하디즘의 근간을 이루는 교리인 살라피즘(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의 이념적 승리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번에도 그가 옳았다. 살라피즘은 유럽을 이슬람 개종을 위한 최우선 전진기지로 여긴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30년 이상 이런 논쟁에 참여해야 하는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정부의 수동적인 태도가 사회적 평화를 가능하게 했을진 몰라도 그로 인해 공화국의 가치관과 상반되는 가치관이 프랑스 도시들 곳곳에 뿌리 내리도록 했다. 그 뒤에도 프랑스 정권들은 호전적인 이슬람 원리주의가 실은 이슬람 파시즘이란 걸 받아들이지 않고 애써 모른 척했다. 정치평론가들이 이슬람 파시즘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나타난 전체주의 변종이라고 지난 수십년간 끈질기게 비난해왔는데도 말이다.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팽배해 있는 근시안적 시각이 정부의 실패를 도왔다. 2012년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 대표는 유대교 남성이 쓰는 모자와 무슬림 여성의 베일이 지닌 정치적 의미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했다. 둘 다 싸잡아 비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바로 이달 프랑스 녹색당 소속 상원의원 에스테르 방바사는 “차도르 못지 않게 미니스커트도 사람을 소외시킨다”고 주장했다. 르 펜과 방바사가 하는 행동이 야만적 행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그런 야만적 행위를 인간적 행동으로 치장하는 짓 때문에 그 미명 뒤에서 살인하고 해치고 강간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걸 간과하도록 해선 안 된다.

극단주의자들은 온건주의자들이 조용히 있을 때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 문제를 야기한다. 프랑스혁명 동안 의회에서 산악파(프랑스혁명기 국민공회의 좌파로 구성원 대부분이 자코뱅당의 급진적 의원들)가 온건파 지롱드당을 몰아냈던 것처럼 광적인 지하디스트들은 법을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 속에서 믿음을 실천하길 원하는 게 전부인 대다수의 이슬람교도들을 몰아내고 있다.

마침내 유럽 정치지도자들은 종교적 광신자들이 자신들을 공격한 이들을 비난할 때마다 종종 겁을 먹고 뒷걸음질치고 있다. 종교적 광신도들의 공격 대상으로 과거에 인도 출신 소설가 살만 루슈디가 있었다면 지금은 알제리 소설가 카멜 다우드가 있다. 많은 지도자들의 첫 번째 반응은 자업자득이라며 그 소설가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의 결과는 분명하다. 폭력적인 급진주의를 달래는 것은 그런 짓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그 결과 우리는 선전포고되지 않은 지적 비상사태에 빠지게 된다. 애석하게도 이 지적 비상사태는, 테러리스트의 유럽 공격 직후 정치인들이 발령한 비상사태를 불러왔다.

이러한 비상사태를 다룰 땐 무엇보다도 가장 자주 말해지고 행해지는 것과 정반대로 말하고 행해야 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는 길을 잃은 이슬람교도이거나 잘못된 길에 빠진 이슬람교도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슬람교도다. 이러한 변종 이슬람교도들이 이슬람과 무관하다고 지겹도록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이젠 반드시 그만둬야 한다.

달리 말해 두 개의 이슬람이 죽도록 싸우고 있는 전쟁에 서구가 휘말려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전쟁이 이 지구에서 펼쳐지고 있고 그로 인해 서구가 지켜온 가치관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이 이슬람교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일단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 우리는 전 세계 세금 회피자들의 음모를 밝혀내는 데 쓰고 있는 에너지와 창의력을 동원해 이슬람 세계의 증오와 테러의 네트워크를 찾아내서 밝혀내고 폭로해야 한다. 우리는 ‘살라피즘의 파나마 페이퍼’(급진 이슬람주의의 자금 은닉처)가 폭로되는 것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신문들이 세계적 지하드의 모사크 폰세카(파나마 최대 법률회사) 같은 다크 웹(일반적인 검색 엔진으로는 찾을 수 없어 주로 불법적인 정보가 거래되는 웹)과 그들의 범죄적인 해외 회사들을 제대로 추적 보도하지 못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

일반적인 인권은 물론이고 여성과 그들의 얼굴과 권리를 존중하는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 증오의 이슬람을 거부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돕고 격려해야 한다. 옛 소비에트 세계에서 반체제인사들이라고 불렸던 용감한 사람들에 대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가 했던 일이 이런 게 아니었던가. 반체제인사들은 단단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절대 승리하지 못할 소수파라고 그 당시 말했던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옳지 않았던가.

당장 급한 예를 들자면, 다우드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것이다. 원래 이슬람교도였던 프랑스어 작가 다우드는 유럽에서 안식처를 찾는 사람들에게 유럽의 가치관을 이해하려고 배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우드는 동시에 두 개의 파트와(이슬람 법에 따른 결정이나 명령)를 떠안게 됐다. 알제리계 프랑스인 저널리스트 모하메드 시파우이의 글을 인용하자면, 그 중 하나는 ‘암살자 형제들’로부터 떠안은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마도 소수의 진보적이고 반인종차별주의자인 프랑스의 지성들로부터 떠안은 것이다. 이 지성들은 그가 아랍 남성들에게 여성의 고귀함을 존중하라고 촉구했을 때 “가장 진부한 오리엔탈리즘을 재활용한다”고 비난했던 이들이다.

진정한 반인종차별주의자, 반제국주의자, 공화제 민주주의를 믿는 사람이라면 살라피스트들의 범죄적 이슬람과 맞서 싸우는 온건과 평화의 이슬람 편에 서야 한다. 이 전쟁은 이념적이고 신학적이며 정치적이다. 또 세계와 문화 그리고 우리가 문명화라고 부르는 것을 가로지른다. 프랑스의 잃어버린 이웃 도시들부터 쿠르디스탄, 모로코, 보스니아, 방글라데시처럼 깨우친 이슬람교도들이 건재하고 있는 지역까지 이어진다. 요지는 그것이 우리의 시급한 임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전쟁이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 프랑스 작가ㆍ철학자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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