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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예쁜 도끼가 탐나는 북유럽 땔감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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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예쁜 도끼가 탐나는 북유럽 땔감의 향기

입력
2017.11.17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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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게 쌓아올린 장작 더미. 고요한 육체노동에 대한 묵상이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다. 열린책들 제공
정교하게 쌓아올린 장작 더미. 고요한 육체노동에 대한 묵상이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다. 열린책들 제공

노르웨이의 나무

라르스 뮈팅 지음ㆍ노승영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280쪽ㆍ1만5,800원

“하다 하다 이젠 나무 패는 법까지 나오네요.” 책 들춰본 후배가 툭 던진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원제는 똑같은 ‘Norwegian Wood‘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을 피해 ‘노르웨이의 나무’라 이름 붙은 이 책의 부제는 ‘북유럽 스타일로 장작을 패고 쌓고 말리는 법’이다. 책을 열어 목차를 보면 ‘추위-숲-연장-모탕-장작더미-건조-난로-불’ 순이다. 진짜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 얘기다.

노르웨이의 기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노르웨이 곳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나무를 키우고, 쪼개고, 저장하고, 때고 있는 지 취재했다. 그래서 내용은 아주 구체적이다. ‘스크롤리혹스트’ ‘펠레벵크’ ‘블라드퇴르크’ ‘쉬레펠링’처럼 발음하기도 어려운 벌목 기법들은 어떤 내용이며, 벌목 품삯의 기준이 되는 ‘1코드’란 얼마만큼 분량의 장작을 얘기하는지, 너도밤나무ㆍ자작나무 등 나무 별 땔감으로서의 특징은 어떠한지 설명한다. 도끼나 전기 톱의 종류와 특징, 마르면서 20%까지나 수축하는 장작더미들을 안정적으로 쌓는 기법들, 이산화탄소 발생을 최소화하는 적정한 수준의 수분함량, 새롭게 개발된 ‘윗불 때기’ 기법, 이에 맞춰 40%대에 머물던 열효율을 90%대까지 끌어올린 최신 난로들에 대한 얘기들도 풍부하다. ‘친환경’ ‘바이오 에너지’에 대해서도 당연히 얘기한다. 허나, 그렇다 해서 감상적인 분위기에 푹 젖어 현대 문명은 쓰레기니까 이제 그만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뻔한 설교를 늘어놓지 않는다.

노르웨이에게 이 얘기는 현실적이다. 현대 문명의 기본인 ‘전기’가 있다지만, 북해 유전 개발로 전기 값이 무척이나 싸졌다지만,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가 덮치는 곳에서 전기만 믿을 순 없다. 그랬다간 사고 한번에 한 마을 사람들 전부가 죽을 수 있다. 그러니 법으로 비상시설을 갖추라 규정했고, 그 때문에 아직도 땔나무와 난로는 노르웨이의 중요한 동력원이다. 아니 예전엔 마지못해 준비했다면, 신기술 개발과 환경의식 강화 때문에 이제는 당당히 에너지원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땔나무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활발한데, 저자는 그런 연구결과도 함께 곁들여놨다.

노르웨이에서 개발된 최신 난로 장작을 태울 때 나는 연기, 그을음 등을 다시 연소시킴으로서 열효율을 90%이상 끌어올리는 신기술이 적용됐다.
노르웨이에서 개발된 최신 난로 장작을 태울 때 나는 연기, 그을음 등을 다시 연소시킴으로서 열효율을 90%이상 끌어올리는 신기술이 적용됐다.

그래,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이걸 알아서 무얼 할까, 이 말이다. 책 자체는 무척 잘 쓰인 책이고 재미있지만, 때 되면 북유럽 국가를 찬양하지 못해 안달이 난 기사와 방송프로그램, 책들이 넘쳐난다지만, 그렇다고 이제는 나무 썰어 쪼개 불 때는 것까지 북유럽 스타일로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저자의 이웃 오타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그 냄새야 말로 무엇보다 좋은 것이지. 갓 벤 자작나무의 냄새 말일세. 한스 뵐리라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인데 그 냄새에 대한 시를 썼어.” 은퇴자, 그것도 폐에 문제가 있어 한겨울 바깥 출입을 제대로 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장작을 구해다 쌓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늙은이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리브 크리스틴은 여전히 옛 작업방식을 고수하는 남편 페데르 브렌덴에 대해 설명하다 이렇게 말한다. “페데르의 삼촌은 늘 소음을 내는 기계에 신경을 곤두세웠어요. 그건 그가 구식이고 까탈스러워서가 아니라, 육체노동의 고요함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촌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다. 수도 오슬로에서 활동하는 주요 노조 지도자인 안네베리트 투프트는 회사와 힘든 협상을 벌일 때면 주말마다 장작을 패러 간다.

이 책이, 그냥 나무 쪼개 불 때는 얘기를 넘어서는 지점들이다. 저자는 이렇게 써놨다. “한번 쪼갠 장작은 영영 쪼개진 채다. 쪼갠 것을 되돌릴 수도, 개선할 수도 없다. 그날의 짜증은 나무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나무에서 난로 속으로 사라진다. 땔나무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 한가지는 타서 없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위원회도 땔나무를 조사하지 않고, 경쟁하는 다른 장작과 비교할 일도 없다. 이윽고 겨울이 찾아오면 엉성하게 자르고 서툴게 쪼갠 장작도 모두 불 속으로 들어간다. 이 장작이 내뿜는 열은 완벽한 장작이 내뿜는 열과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집불통 소나무 뿌리를 태울 때 향기가 나지 않던가.”

노르웨이 농가를 지나가다 보면 장작 쌓기가 생활예술이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물고기 모양으로 쌓인 장작, 아래 사진은 장작으로 만든 국왕 하랄5세 부부의 초상화. 열린책들 제공
노르웨이 농가를 지나가다 보면 장작 쌓기가 생활예술이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물고기 모양으로 쌓인 장작, 아래 사진은 장작으로 만든 국왕 하랄5세 부부의 초상화. 열린책들 제공
노르웨이 농가를 지나가다 보면 장작 쌓기가 생활예술이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물고기 모양으로 쌓인 장작, 아래 사진은 장작으로 만든 국왕 하랄5세 부부의 초상화. 열린책들 제공
노르웨이 농가를 지나가다 보면 장작 쌓기가 생활예술이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물고기 모양으로 쌓인 장작, 아래 사진은 장작으로 만든 국왕 하랄5세 부부의 초상화. 열린책들 제공

육체노동이 주는 고요함이란 곧 유한성에 대한 개개인의 깊은 자각과 묵상 같은 것이다. 장작 패서 불 때는 책이 19개국에 번역, 소개되면서 60만부나 팔려나가는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셈이다. 동시에 지극히 현세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우리가, 이런 배경이나 사정을 음미하지 않고 무조건 북유럽 모델에 열광하는 게 옳은 지도 헷갈린다.

“이국적 취향으로 재미있을 것 같았다”는 게 편집자의 말인데, 이 책이 한국 시장에서도 통할까. 편집자는 한마디 덧붙였다. “다 읽고 나면 예쁜 도끼 한 자루 갖고 싶어지는 책이에요.” 하아, 건조율 9%대까지 바짝 메마른 남자의 로망에 불씨 하나 툭 던지는 얘기다. 안 그래도 북유럽이 자랑하는 7종류의 도끼를 소개할 때 빨간색 ‘비푸키르베스 때림도끼’를 보고 마음이 동하던 차였다. 그래, 남자를 키우는 8할은 ‘장비빨’이지.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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