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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속 긍정의 화상 환자, 바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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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속 긍정의 화상 환자, 바로 나”

입력
2017.02.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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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사고 아픔 딛고

2년 만에 자전적 이야기 담은

‘주먹 쥐고 치삼’ 무대 올려

“상처로 세상 등진 이들이

눈치 보지 않는 세상 만들고파”

자전적 연극 ‘주먹 쥐고 치삼’의 기획 프로듀서 이동근씨. 전신화상도 연극을 향한 그의 꿈을 꺾지 못했다. 사진 제공 아이디서포터즈
자전적 연극 ‘주먹 쥐고 치삼’의 기획 프로듀서 이동근씨. 전신화상도 연극을 향한 그의 꿈을 꺾지 못했다. 사진 제공 아이디서포터즈

연극에 미쳐 연극인보다 연극을 더 사랑한다는 말을 듣던 청년은 공연기획자가 됐다. 처음 기획한 연극 축제를 성공리에 마치고 기뻐한 것도 잠시, 불의의 사고로 전신 50% 3도 화상을 입었다. 피부가 녹아 내려 얼굴과 몸은 망가지고, 성대가 달라붙어 목에 꽂은 튜브를 막지 않으면 말도 할 수 없다. 8개월간 입원했고, 서른 번 넘게 수술을 했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그러나 그의 꿈은 불타지 않았다. 퇴원 후 사고 보상으로 받은 보험금으로 공연기획사를 차려 ‘대한민국 희곡작가전’ 등 10편이 넘는 연극과 축제를 기획한 데 이어 자전적 연극을 내놓았다. 원안을 쓰고 직접 제작했다. 대학로 세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주먹 쥐고 치삼’의 실제 주인공 이동근(31)씨. 2015년 1월 화재 사고 이후 2년 만이다.

남들은 화상으로 그가 입은 상처를 생각하며 끝내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기에 놀라워하지만, 정작 그는 “나는 특별하지 않다”며 영웅으로 비치기를 거부한다.

“남들이 자신을 저랑 비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약한 사람이에요. 화상 때문에 아프고 힘들어 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태도가 조금 다를 뿐이죠. 상처 때문에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주먹쥐고 치삼'의 배우들과 함께한 실제 주인공 이동근(앞줄 중앙)씨. 사진 제공 아이디서포터즈
'주먹쥐고 치삼'의 배우들과 함께한 실제 주인공 이동근(앞줄 중앙)씨. 사진 제공 아이디서포터즈

지금은 누가 쳐다 봐도 잘 못 느끼지만, 초기에는 사람들과 많이 싸웠다고 한다. 화상 환자라고 힐끔힐끔 보는 것 같아서, 남들이 자신을 불편하게 여길 것 같아서, 식당에서 물을 조금 늦게 주기만 해도 화를 참지 못했다. 그게 스스로 만든 선입견임을 깨닫는 데 시간이 걸렸다.

‘화상 당한 걸로 동정심이나 자극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극중 대사처럼 더러 삐딱한 시선에 부딪치기도 한다. 그때마다 여전히 아프지만, 예전처럼 크게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치고 나니 누굴 만나도 설득하기 좋다. 화상 환자라는 타이틀이 붙으니 더 멋있어 보이지 않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이번 작품의 연출가, 배우, 작가도 제 경력으로는 섭외하기 힘든 뛰어난 분들”이라며 뿌듯해한다.

중학생 때 연극에 빠졌다. 교내 연극제 무대에서 처음 느낀 짜릿함을 못 잊어 길을 정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주말마다 경남 남해에서 서울까지 와서 연극을 보며 고교 시절을 보냈다. 왕복 10시간 거리를 마다지 않았던 열정을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한동안 접어야 했다. 병원비를 대느라 돈을 벌어야 했다. 그 때 나이 스물 한 살. 죽어라고 일했다. 이십대 중반에 외제차를 사서 굴릴 만큼 큰 돈도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잊고 있던 꿈, 연극을 다시 깨웠다. 열정대학이라는 청년 진로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해 공연을 공부하는 과목을 열었다. 1년에 200편 가까이 연극을 보고, 연극인들을 인터뷰하고 연극 잡지와 평론집을 탐독하며 꿈을 키운 끝에 마침내 공연기획자가 되었지만 화상을 당했다. 먼 길을 돌아서 힘들게 되찾은 꿈이 또다시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위기를 그는 멋지게 넘겼다.

‘주먹 쥐고 치삼’은 그가 화상 환자로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세상에 던지는 선언 같은 작품이다. 불에 타서 뭉뚝해지고 손가락이 달라 붙어 쥘 수 없었던 주먹을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쳐 쥘 수 있게 된 지금, 그 주먹으로 무엇을 치고 싶냐고 물었다.

“주먹을 쥘 수 없다고 진단했던 의사일 수도 있고, 저의 가능성을 부정한 사람들일 수도 있겠죠.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거기서 멈췄다면 지금의 저는 없겠죠. 그렇게 포기할 뻔 했던 저를 주먹으로 한 대 때려줄 수도 있겠고요.”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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