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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쟁반 이야기

입력
2017.01.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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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첫 가정실습이 있던 날이었을 것이다. 양배추를 썰어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었을 텐데, 그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집에서 접시도 챙겨가고 칼도 챙겨갔다. 중학교 1학년이었다. 나는 집에서 굴러다니던 쟁반을 가져갔다. 국어 선생님이 내 책상 옆에 놓인 쟁반을 언뜻 쳐다보았다. 플라스틱 쟁반에는 국회의원의 사진과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 민정당 소속 의원이었겠지. 선생님은 쟁반을 부숴버렸다. “쟁반 만들라고 국회의원 시켜놨냐? 엄마한테 선생님이 부쉈다고 얘기해. 물어줄 테니까.” 선생님은 교탁으로 돌아가다 몰래 쪽지를 주고받는 친구 두 명을 잡아냈다. 쪽지를 내놓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결국 빼앗긴 친구가 울음을 터뜨려서 우리는 바짝 긴장을 했다. 선생님이 쪽지를 읽었다. “쉬는 시간에 보름달 먹으러 가자? 아이고, 이것들아. 좀 있으면 점심시간인데 무슨 빵을 먹겠다고!” 수업이 끝난 후 친구는 돌려받은 쪽지를 손에 쥐고 숨을 몰아 쉬었다. 선생님이 미처 못 본 쪽지 뒷면에는 “저 선생님 빨갱이 같아.”라고 쓰여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크면 달라질 거라고 했지만, 그래서 사실 우리는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들은 변함이 없다. 선거를 앞두고 요양원을 찾아가 밥 먹이는 사진 한 장 찍으면 우리가 그를 선한 인물로 믿어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장애인 목욕 한 번 시키고 시장에 들러 상인들과 악수 한 번 나누면 서민들의 고통을 이제 다 이해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줄로만 아는 모양이다. 그건 쟁반에다 구구절절 제 업적을 새기는 일 말고는 더 할 것이 없던 촌스러운 80년대식이다. 30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그만들 좀 하시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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