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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2월 6일] '레미제라블'에 빠진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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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2월 6일] '레미제라블'에 빠진 48

입력
2013.02.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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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 톰 후퍼 감독이 최근 국내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한국 국민들이 어째서 이토록 을 향해 뜨거운 사랑을 보내주는지 정말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적 특성인지,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어떤 점이 한국 관객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정말 알고 싶다"고 했다. 그가 몇 번이나 '정말'이란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정말로 궁금한 모양이다.

영화는 지난해 12월 18일 대선 전날 개봉됐다. 뮤지컬 영화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관객수가 600만에 육박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이 이란 제목으로 다 알려진 터여서 흥행은 의외였다. 뮤지컬 영화인데도 음악보다 스토리가 더 많은 입소문을 탔다.

주요 스토리는 세가지다. 빵을 훔친 장발장이 19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또 도둑질을 하다 들켰으나 주교의 사랑으로 회개했다. 프랑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극심한 빈부격차로 양산된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의 6월 항쟁(1832)이 전개된다. 국가 법질서 유지에 온몸을 바친 자베르 형사가 장발장을 뒤쫓다 장발장의 관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대목들이다.

굶주림에 빵을 훔쳤다가 징역형을 받은 데서 무전유죄(無錢有罪)의 공감을 가졌으며, 죄를 사랑으로 껴안은 주교의 모습에서 참 종교인을 발견한 대목은 잘 알려진 바다. 후퍼 감독이 그렇게도 궁금해 하는 커다란 이유는 관객들이 시대상황에서 일종의 기시감(旣視感ㆍ데자뷰)을 가졌기 때문 아닐까.

6월 항쟁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과 달리 무자비한 진압으로 실패했다. 성공한 세 번의 혁명은 절대왕권에 대한 시민들의 입지를 높이는 계기였다. 대혁명이 성공했으나 나폴레옹 황제가 등장해 공화정이 물 건너간다. 다시 혁명이 일어나고(7월 혁명), 새로운 권력이 생겼으나 그 권력은 기득권과 결탁하여 독재로 복귀한다. 심각한 사회양극화로 국민들은 비참한 생활에 빠지고(레미제라블), 6월 항쟁이 일어난다. 영화 속 대사에서 항쟁에 참여한 시민은 "예전엔 자유를 위해 싸웠는데 이제는 빵을 위해 싸우네"라고 절규한다.

관객들은 영화에 이어지는 스토리를 나눠 갖는다. 실패한 항쟁이 2월 혁명으로 성공하기까지는 다시 16년이 걸린다. 하지만 3년 뒤 '나폴레옹 신드롬'을 업고 나폴레옹의 조카가 대통령이 된다. 그는 공화정을 뒤엎고 황제에 오른다. 위고의 원작은 이후 1862년에 나왔다. 대선 직후부터 불기 시작한 열풍의 이면에는 이러한 스토리가 끈적하게 매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후퍼 감독이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문에 대한 한 가닥 대답이 되었으면 한다.

빼놓을 수 없는 다른 포인트는 자베르 형사의 모습이다. 그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공무원으로 출세했다. 법과 질서야말로 자신과 국가를 지탱하는 근본이라고 믿기에 그것을 위반하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갖는다. 그 대상이 장발장이다. 하지만 스스로 전부라고 여기는 법질서 개념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 장발장으로부터 목숨을 구제받는 상황을 경험하고는 자살을 선택한다. 그가 "오늘 그가 내 목숨을 살려줌으로써 내 영혼을 죽였다"고 한탄한 대목은 법질서 위에 자비와 사랑과 희생이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법질서가 만능의 잣대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이상의 가치를 갈구하고 있는 우리의 내면도 후퍼 감독에게 알려줘야 할 대목이다.

현 시점에서 많은 이들이 왜 영화 에 빠져들고 있는지 정작 궁금해야 할 쪽은 의외의 횡재를 한 후퍼 감독만이 아니다.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회 위원들, 새누리당 간부와 의원들이야말로 그 궁금증을 파고들어야 한다. 영화 의 관객들 가운데 젊은 층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특히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등을 돌렸던 48%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영화와 원작이 거듭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51.6% 지지를 얻은 새 정부가 간과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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