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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이란 핵 협상에 드리운 북한의 그림자

입력
2015.08.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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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볼 때 북한 사람들은 이란 핵 협상을 지체 없이 실망스러워했다. 그래서 그 사례를 따라 할 것 같지도 않다. 발표를 보면 북한은 북한의 계획과 이란의 계획을 차별화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핵무기들은 미국의 ‘적대 정책’에 대응하는데 필요하다는 진부한 태도로 되돌아갔다. 새로운 사고가 없어 보이는 북한의 지도자들은 통제 당하는 국민들에게 가망 없는 미래를 제시하며 버텨나가려는 것 같다.

이란 핵 합의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란의 행동과 북한의 행동을 비교한다. 그리고 북한과 협상이 유지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란과의 협상도 결국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두 가지 경우에는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이란은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더 근본적으로는 그 목표와 대상이 확실한 것인지를 의심받아 왔다. 그리고 범(汎) 중동 지역에서 이란의 행동-특히 그 지역 테러 집단들에 대한 지원-은 지역 안정과 경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북한의 행동을 거북해하는데 이란은 북한을 무역상대국이자 마음 맞는 나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북한은 2005년 9월에 이른바 6자회담의 다른 5개 당사국들과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그 성명은 비핵화 목표를 지지하고, 특히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약속했다. 이에 상응해 북한은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 게다가 미국과 한국은 영구적 평화협정, 외교 관계 정상화, 경제적 지원(한국 정부의 에너지 분야 계획을 포함한)과 북한의 민간 핵 프로그램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문제를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북한에 전달했다.

이란 핵 협상이 지극히 구체적이었던 것과 비교한다면 2005년 9월의 공동성명은 한참 구체성이 떨어진다. 그 협상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은 단순한 약속들 말고는 어떤 구체적인 조치들을 할 것인지 요구 받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먼저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그 협상은 ‘행동 대 행동’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행될 것이었지만 북한을 포함해 어느 나라도 상응한 행동들이 없는 한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었다.

북한이 핵무기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고, 북한 사람들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결국 북한은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로 최종적으로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도 대화하지 않은 채로 있다. 그때 이후로 가장 의미 있는 외교 성과는 판단력을 의심할만한 미국의 전직 농구선수가 방문한 것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최근 이란과의 합의가 같을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희망과 순진함이 현실주의와 경험을 이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두 나라를 객관적으로 비교해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이란을 비판하려 든 결과물이다.

이란은 혼돈에 휩싸인 과거를 가진 나라다. 정치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국내에서나 역내에서 그리고 세계적인 역할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란의 행동을 수니파 아랍국가들에 역내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경쟁과 종종 이스라엘에 대한 오판과 적대 정책의 산물로 여긴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에 죽음을”(이 문구는 페르시아어로는 멋있게 들린다)이라고 말하는 나라는 세계 무대에서 자국을 그다지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란은 개화되면서 갈수록 복잡해지는 국제 질서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엄청난 역량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과 달리 이란은 역동적인 시민사회를 지니고 있으며 역내의 부러움을 사는 식자층을 갖고 있다. 이주해서 살고 있는 지역이 광대하며 세계에서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의 하나다. 현대화에 대한 정치적인 합의를 하지 못해 이런 잠재적인 역량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려 깊은 이란인들(이런 사람들이 많다)은 자국의 역내 그리고 국제 역할에 대해서 4,000년의 위엄 있는 역사가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와 미국에 대한 반감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층을 불문하고 이란인들에게 핵 햅상의 의미는 그 문구가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심오한 것이다. 우리는 그 합의가 국제적으로, 특히 미국 내의 갈등하는 정치인들이나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국가들의 침착하지 못하고 당황스런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란 사람들이 그 합의를 그들의 오랜 역사 속에서 결정적인 한 순간으로 여기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란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문명국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관점에서 말이다.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 앞에 무엇이 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헤쳐가야 할 위기는 더 많지만 이란 사람들은 더 현명하게 행동하기를 기대해본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전 차관보ㆍ 덴버대학 코벨국제대 학장

번역=김범수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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