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7.08.10 16:30
수정 : 2017.08.10 16:30

[황영식의 세상만사] 살을 주고 뼈를 베자

등록 : 2017.08.10 16:30
수정 : 2017.08.10 16:30

美ㆍ北 긴장 고조에도 할 일 없다지만

‘부자 몸조심’ 털고 죽을 각오를 해야

오천만 총력체제는 핵 무장보다 강해

불안하다. 요 며칠 미국과 북한이 주고받은 ‘말 폭탄’의 기운이 심상찮다. ‘화염’과 ‘불바다’, ‘정권 종말’과 ‘괌 포위 사격’ 등의 언사도 섬뜩하지만, 그 주인공인 도널드 트럼프나 김정은 둘 다 속을 요량하기 어려운 존재여서 걱정이 더하다.

언제든 상식과 동떨어진 행동에 나설지 모른다는 우려가 뇌리를 맴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조차 위안이 되지 않는다.

‘4월 위기설’이 우발적 군사 충돌 가능성에서 나온 것이라면, ‘8월 위기설’은 구조적 충돌 요인이 뚜렷해졌다. 우선 미 국방정보원(DIA)이 진단했듯,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이 ‘레드 라인(금지선)’을 밟은 정황이 뚜렷하다. 머잖아 북한이 ‘레드 라인’을 훌쩍 넘어서리라는 경각심이 번지고 있다. 현재의 ‘말 폭탄’ 수위나 양측이 은근히 자랑해 온 준비행동도 충돌 가능성을 높였다.

만일의 군사 충돌에서 한반도가 최종 전장일 수밖에 없는 숙명과는 딴판으로 ‘운전대를 잡은’ 문재인 정부가 시동도 걸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는 것 또한 불안하다. 미국과 북한의 ‘말 폭탄’이 머리 위로 오가는데 끼어들 틈이 어디 있느냐는 볼멘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남측과는 할 얘기가 없다는 북의 분명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대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태도만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피해서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상황은 모면해야겠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나아가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살을 주고 뼈를 베겠다’는 각오로 맞설 수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아니다.

대학 시절 농촌활동에 갔다가 잠시 고향에 들른 서울 변두리 ‘양아치’와 만났다. 정치깡패 말단 행동책 경력을 자랑 삼아 떠벌리던 그는 수시로 하숙집에 드나들 정도로 친해지고도 패악질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한동안 참았다. 아니 그가 떠벌린 과거 경력과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칼이 무서워서 그랬을 게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하숙방 친구의 손등을 담뱃불로 지지려는 지경에 이르러 더는 참지 못했다. 곧장 달려들었다. 그는 미처 칼을 꺼내지도 못한 채 흠씬 두들겨 맞고는 무너졌다. 이후로는 발길이 뜸하더니 연락이 끊겼다.

곰이 두려워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도망을 치다 보니 곰이 점점 더 두려워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맞은 안보 불안도 비슷할 수 있다. 북한과의 군사 충돌 가능성 자체에 두려움을 느껴 피하려다 보니 애초에 여러 가지 선택의 하나였을 ‘평화와 대화’를 유일한 대안이듯 떠받든 것은 아닐까. 이제는 평화를 내세워 전쟁을 억지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 전쟁의 공포를 안김으로써, 최소한 우리와 공포를 공유하게 함으로써 평화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물음도 부질없다. 핵은 어차피 전쟁 억지 수단이자 최후의 방어 수단이다. 북을 공격해 점령하겠다는 게 아니라 북의 공격을 최대한 가로막겠다는 우리 안보 목표에 비추어 실제로 북이 핵을 사용해야 할 상황까지 갈 이유가 없다. 섣불리 대남 무력도발에 나섰다가는 북의 정권과 군대가 궤멸적 보복공격을 당하게 되리라는 위협은 재래식 무기체계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북의 핵ㆍ미사일 개발이 남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기보다 미국부터 겨냥해 한미동맹을 차단하려는 우회적 위협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결여한 것은 결연한 의지뿐이다. 경제성장의 결과, 작은 충돌로도 잃을 것이 많아져 ‘부자 몸조심’ 의식은 팽배한 반면, 유사시 한 몸을 던져 아이들의 장래를 지키겠다는 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5,000만이 뭉쳐서 맞서는 힘이야말로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 핵무장 못지않을 터이다.

따라서 ‘8월 위기’를 넘길 방책은 여차하면 40대, 아니 50ㆍ60대라도 대한민국 방어전쟁에 몸을 던지겠다는 다짐이다. 아직 방아쇠를 당길 힘이야 있지 않은가. 문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부터라면 최선이겠지만, 아니라면 국민부터라도 나서자. 스스로의 그런 다짐으로 번져 가는 불안에 답하고 싶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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