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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자동차 현대사] 카렌스, 승용차가 된 소형 미니밴

입력
2018.03.27 14: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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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카렌스는 1999년 6월 3일 첫선을 보였다. 신차발표회 장소는 호텔 대신 서울 여의도 공원을 택했다. 레저용차(RV)인 만큼 야외에서 축제형태의 발표회를 연 것이다.

승용 감각의 미니밴을 지향하는 카렌스는 ‘카(승용차)’와 ‘르네상스(부흥)’의 합성어로 경제성과 실용성, 레저용 기능을 살려 고객의 다용도 요구에 부응한 차라고 기아는 설명했다.

카니발 카스타와 함께 기아차의 미니밴 3총사를 구성했다. 같은 브랜드에서 3개의 미니밴 차종을 판매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기아차를 RV 전문 브랜드로 키우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전략이다. 기아차는 이를 위해 서초동에 다목적차 전문매장인 ‘오토갤러리’를 여는 등 RV 전문 메이커라는 이미지를 키워갔다.

카니발과 카렌스는 성공적인 내수 판매를 이어갔다. 특히 카렌스는 주문 후 몇 개월씩 기다려야 했다. 카니발과 카렌스의 선전에 힘입어 기아차는 대우차를 추월해 현대차에 이어 내수시장 2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에는 기아차 외에도 현대 싼타모, 대우 레조 등 경쟁 브랜드 미니밴이 많았다. 되돌아보면 당시가 미니밴 전성시대였다. 유럽에서 시작된 모노볼륨카, 즉 소형 미니밴 바람이 한국에 영향을 미친 시기였다.

카렌스는 준중형 세단 세피아의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변속레버가 스티어링휠 아래에 자리하는 칼럼식 시프트레버를 적용해 실내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었다. 승합차로 분류돼 자동차세가 저렴했고, LPG 엔진을 사용해 연료비도 아낄 수 있었다. 차선통행 제한도 풀렸다. 승용차만 1차로를 달릴 수 있다는 제한 규정이 풀려 승합차도 1차로로 달릴 수 있게 됐다.

카렌스가 등장했던 1999년은 RV 특수가 형성되던 시기다. 승용차 기준을 6인승에서 10인승 이하로 변경하는 새로운 자동차 관리법이 2000년 시행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99년에 RV를 사야 등록세, 자동차세 등을 아낄 수 있어 RV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결국 카렌스는 2002년 2월 단종된다. 출시된 지 만 6년을 채우지 못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인데 인기가 식어서가 아니라 규제 때문이었다. 승용차로 분류되면서 여러 가지 까다로운 기준을 맞춰야 했는데 디젤엔진의 배기가스가 문제였다. 승용차에 디젤엔진을 사용할 경우, SUV나 다목적차보다 배기가스 기준이 최고 50배나 엄격했다. 도저히 기준을 맞출 수 없는 수준인 것.

기아차는 대신 후속 모델인 X트렉에 차동제한장치인 LSD를 추가해 다목적차(승용2)로 출시했다. ‘프레임형이거나 4륜 구동장치 또는 차동제한장치를 갖추는 등 험로운행이 용이한 구조로 설계된 자동차로서 일반ㆍ승용 겸 화물형이 아닌 것’을 다목적자동차로 규정하는 자동차관리법에 따른 조치였다. LSD를 추가해 승용이 아닌 다목적자동차로 분류해 디젤엔진의 배기가스 규정을 피해간 것이다.

카렌스는 자동차 시장에서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만하다. 같은 차를 법적으로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판매와 생사가 갈리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모델이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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