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지근까지 진격
사실상 내전 상황 치달아
정부군 속수무책 당해
탈영 속출하며 전선 붕괴
美 파병 가능성 선 긋기 속
드론 공격 방안 등 검토
나토 대사들 긴급 회동도
올해 초 시리아 알레포에서 노선갈등으로 시리아 반군에게 쫓겨났던 이라크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가 귀환한 조국 이라크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라크 북부 지역을 장악한 뒤 수도 바그다드를 향해 급속 남진하고 있다. 탈영병이 속출하는 등 기강이 땅에 떨어진 이라크 정부군은 속수무책이어서, 미국과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외부개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라크 전역이 자칫 내전 상황에 빠질 위기다. ★관련기사 17면
모술, 티크리트 접수 바그다드로
12일 외신에 따르면 ‘이라크ㆍ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로 불리는 무장단체가 10일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장악한 데 이어 11일에는 살라헤딘주 티크리트까지 장악했다. 이로써 서부 안바르주 라마디 일부와 팔루자 등을 포함해 당초 이라크 중앙정부가 관할하던 지역의 30%가 이들에게 넘어갔다.
문제는 ISIL의 기세가 워낙 강해 수도 바그다드 함락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실제로 ISIL은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속옷 파는 장사치’라고 조롱하는 내용의 성명에서 바그다드 진격을 선언했다. ISIL은 또 이라크 최대 정유시설이 있는 티크리트 인근 바이지에도 접근, 일부 지역을 장악했다. 모술에서 남쪽으로 200㎞ 떨어진 바이지는 하루 30만 배럴 원유를 처리하는 이라크 최대 정유시설이 들어선 전략 요충지다.
ISIL은 키르쿠크 주 남부를 포함한 이라크 중부 4개 주에서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전황이 ISIL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외신들은 바그다드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빠르게 남진한 일부 ISIL 병력이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10㎞ 떨어진 사마르 외곽까지 접근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AP통신은 “ISIL이 남쪽으로 진격하고 있지만 반대 종파인 시아파 민병대의 강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며 “수도 바그다드가 즉각적인 위험에 처할 것 같지는 않다”고 예상했다.
미국 이라크에 추가 지원 약속
사태가 악화하자 ‘이라크 수렁’에 다시 빠지지 않으려고 외면하던 미국도 태도를 바꾸고 있다. 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공습 요청을 묵살한 사실이 알려져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반군이 유전지대를 석권하면서 국제 원유시장에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일단 무인기(드론)을 보내 반군을 공격하는 방안을 포함해 이라크 정부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미 국무부 젠 사키 대변인은 “미국은 이라크 정부가 반군 세력에 대항할 수 있도록 추가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파병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그럴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인 2003년 이라크 전을 시작한 미국은 막대한 전비를 쏟아 부은 뒤 2011년 간신히 병력을 철수시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라크가 심각한 안보적 도전에 직면했다”며 “국제사회가 단결해 이라크와의 결속을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터키 정부는 ISIL이 모술의 터키 총영사관을 급습해 외교관과 경호원, 가족 등 터키 국민 48명을 납치한 것과 관련, 이들이 해를 입으면 보복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회원국 터키 요청으로 나토 대사들도 11일 저녁 긴급 회동을 하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지리멸렬한 이라크 정부군
외신들은 ISIL의 세력확장은 이라크 정부군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반군의 공세에도 불구, 수천 명 군인들이 무기를 버리고 탈영하면서 이라크 전역의 전선 부대가 무너지고 있다고 전했다. 모술이 반군에 넘어가기 직전에 이라크 군에서 탈영과 사망, 부상으로 하루에 300명씩 병력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라크군 탈영병인 모하메드(24)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몇 달 전부터 병사들이 탈영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탈영병도 “기본훈련만 마치고 팔루자에 배치됐는데, 전투가 너무 격렬했으며 우리는 많은 병력을 잃었고 나도 친구 3, 4명을 잃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는 탈영병을 행방불명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위기 상황을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11일 바그다드 주변 검문소를 지키는 군인들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일부는 차량에 빨리 지나가라는 몸짓을 하면서 휴대전화로 잡담을 했다고 전했다. 이라크군 지휘관들도 “탈영 비율과 휴가 후 미귀대율이 아주 높다”고 인정했다. 말리키 총리가 지휘 책임을 묻는다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지휘관을 너무 자주 바꾼 것도 사태를 복잡하게 만든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이 과거 중동의 맹주였던 이라크군을 해체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이후 자위력을 갖춘 조직으로 복원시키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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