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발의할 예정인 상법 개정안이 외국계 투기 자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점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주주의 의결권이 지나치게 제한되고, 기업이 경영 전략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도 재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재계는 모회사의 주식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에 대해 책임 추궁을 할 수 있도록 한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외국계 투기 자본의 악용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염두에 둔 외국계 펀드가 악의적 소송을 제기하고 이를 빌미로 경영권에 개입하거나, 소송 제기로 주가가 하락한 모회사 주식을 사들인 뒤 소송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단기 차익을 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한 뒤 증거조사나 장부열람을 통해 자회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 등을 손에 넣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감사위원을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고 이 때 대주주가 보유 지분 3%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것과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뽑을 때 1주당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도록 한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대주주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산술적으로만 보면 외국계 펀드가 연합해 20%가 넘는 지분을 확보할 경우 이사 1명과 감사위원 3명 등 모두 7명의 이사진 중 4명을 선임해 이사회를 장악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투표제도도 소액주주들의 투표 참여를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주주총회장에 오지 않은 주주들이 온라인상에서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몰표를 던지는 등 불확실성이 증폭될 수 있다. 본인확인절차에 기술적 오류가 발생할 경우 이중투표나 주주 본인 외 다른 사람이 투표할 가능성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1999년 SK텔레콤과 타이거펀드, 2003년 SK와 소버린, 2006년 삼성물산과 헤르메스, KT&G와 칼 아이칸 등 외국계 펀드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국내 기업이 수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인 바 있다”며 “자칫 상법 개정안이 적대적 인수합병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입법 과정에서 기업의 어려움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설득 작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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