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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가대표 자연?

입력
2017.10.13 17: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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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나가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 하나 있다. 낯선 나라를 다니다가 우리나라 기업의 광고판을 만나 잠시라도 반가워했던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분야는 물론 국가경제에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는 필자조차, 타지에서 우리의 회사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일말의 뿌듯함이 있다. 물론 특정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이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아서는 아니다. 나와 그 기업의 공통분모인 이 변방의 작은 국가,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면 갈수록 대표성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경제나 정치, 스포츠나 예술은 물론, 웬만한 상품에도 뭐가 ‘국가대표’인지가 수 많은 이들의 관심사이다. 이런 칭호의 영광이 부여된 이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명실상부 최고의 자리에 등극한 것으로 간주된다. 김치나 불고기는 우리의 대표 음식이고, 광화문과 인사동과 남산은 서울의 대표 명소로 불린다. 당연히 무엇을 대표로 삼느냐에 대해 여러 이견이 있다. 모든 이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어도, 상당수의 동의를 거쳐 대표성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대표성을 지니기 위해 딱 하나의 기본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상의 진정한 일부로 존재하는 무엇이어야지만 비록 개별적인 것이더라도 전체를 아우르고 품는 무엇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 우리나라의 대표 동물은 무엇인가. 이 역시 답은 다양하겠지만, 보통 많이들 호랑이라 답한다.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호랑이는 조선왕조실록에만 635회 언급되고 각종 민담과 전설, 그림과 장신구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날에도 여러 지자체, 대학, 그리고 스포츠 팀은 물론 온갖 상호 속에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 당연히 뒤따르는 질문이 있다. 위의 논리에 따르면 상징은 상징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엄연한 실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질문은 물론 이것이다. 호랑이는 우리나라에 있는가.

모두가 알다시피 호랑이는 남한에서 멸종되었다. 경주 대덕산에서 1921년에 잡힌 한 개체가 포획된 호랑이의 마지막 기록이다. 그게 뭐 대수냐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1972년 뮌헨 올림픽의 닥스훈트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동물이 마스코트가 되어왔지만 이중 자국에 멸종된 동물을 마스코트로 삼은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동물이 아닌 마스코트를 쓴 2012년 런던이나, 상상의 동물을 만든 2016년 리우 등을 제외하면, 한국은 동ㆍ하계 올림픽에 모두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호랑이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국가를 대표할 최소한의 실체가 없는 것이다. 더한 문제는 있든 없든 아무도 상관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문제는 이것이 전 지구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발표된 한 연구는 세계 각국의 상징 동물을 실태를 조사하였다. 전 세계 189개국의 상징 동물의 현 상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35%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45%가 개체군 감소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국가 상징동물 중 2가지 동물은 멸종 상태이며, 4가지 동물은 해당국가에서 사라진 상태이다. 법에 의해 보호받는 동물은 전체의 16%에 불과하고, 50%만이 최소한의 조치라 할 수 있는 국제적 상거래가 제한된다. 연구진의 다음과 같은 말로 논문을 끝맺는다. “한 국가를 상징하는 동물도 보호하지 못한다면 다른 종들은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더 이상 없다면 최소한 나라 밖 호랑이라도 신경을 쓴다면 그나마 정상참작이나마 가능할지 모른다. 아무르 호랑이가 결국 한국 호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마당에 말이다. 우리의 국가대표에 환호하기 전에, 대표할 국토와 자연의 실체를 보호해야 한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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