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5.02.09 18:21
수정 : 2015.02.10 10:24

[이계성 칼럼] 문재인에게 없는 것

등록 : 2015.02.09 18:21
수정 : 2015.02.10 10:24

전당대회서 전에 없던 권력의지 과시

손해 보더라도 대범한 양보 아쉬워

계파 척결 등 감동의 정치 선사하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신임 당대표가 9일 대표 취임 후 첫 행보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후 돌아서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본래 정가안팎에서는 권력의지 박약을 정치인 문재인의 최대 약점으로 꼽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후보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할 즈음 문재인 불가론의 주된 근거도 바로 이것이었다.

온화하고 반듯한 모범생 같은 면모가 그런 이미지를 심어줬을 터이다. 그러나 이번 새정치민주연합 당권 경쟁과정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더 이상 문재인이 적어도 권력의지가 약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엔 당권경쟁에 뛰어들지 말지 좌고우면하는 듯 했지만 일단 참여 결정을 내린 뒤에는 당권을 반드시 쥐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자신의 대세론을 흔들며 무섭게 추격해 오는 박지원 후보에 대해 가차 없는 반격을 가했다. 후보 토론과 연설에서 독설에는 독설로, 감정에는 감정으로 맞받아치며 진흙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호남 총리론과 같은 실수도 했지만 당권을 향한 집념과 결기에서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특히 경선 막판에 자신에게 불리한 당원ㆍ일반국민 여론조사 합산방식 시행세칙 문제를 제기해 관철시킨 것은 당권 쟁취를 향한 문재인의 집념을 잘 보여줬다. 박지원 측은 전당대회를 목전에 두고 경선 룰을 고치는 게 말이 되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친노 패권주의 행태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하지만 전당대회준비위가 문재인 후보 측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인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만큼 문 후보 측의 룰 변경 작업이 치밀하고 집요했다는 뜻이다.

결국 문재인은 3.5%포인트 차로 박지원을 누르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대세론을 구가한 것치고는 근소한 표차다. 당 선관위가 일반당원ㆍ국민여론조사 합산의 쟁점인 ‘지지후보 없음’응답률을 밝히지 않아 속단할 수 없지만 여론조사 합산방식 룰을 바꾸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친노 진영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경선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문재인 진영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 국민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합산방식 변경에 매달리지 않을 수밖에 없을 만큼 박지원의 추격세가 무서웠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목전의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쩨쩨한 모습을 보인 것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국민들은 대범하게 손해를 감수하는 정치인의 모습에 감동한다. 문재인이 변경 전 여론조사 룰이 자신에게 불리해도 경선전이 시작됐으니 그냥 가자고 했다면 어땠을까. 필시 많은 당원들과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계파싸움과 네거티브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제1야당의 전당대회 양상도 일거에 달라졌을 수도 있다. 대범하게 양보하는 모습이 투표와 여론조사에도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고,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 문재인의 위상을 한층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비마다 손해가 분명한 길을 마다하지 않아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문재인에게서 그런 면모를 보기 어렵다는 게 아쉽다. 그는 국회의원 지역구도 텃밭의 안전한 선거구를 선택했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와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선제적으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함으로써 후보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반감시켰다. 그 결과 본선에서는 ‘무난하게’지고 말았다.

제1야당의 문재인 새 대표는 9일 당 중진들과 함께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등을 참배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2012년 대선후보 때와는 다른 행보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문재인의 변화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는 한 단계 발전이지만 전날 전당대회 대표 수락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 선언과는 아귀가 잘 안 맞는다.

친노의 중심에 자리한 문 신임대표는 앞으로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겠다고 계파 종결을 선언했다. 내 것을 양보하고 내려놓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다. 하지만 기회는 아직 있다. 권력의지에 충만한 문재인이 앞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의 정치를 선사하게 될지 기대해도 될까.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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