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7.12.07 17:38
수정 : 2017.12.07 19:48

[황영식의 세상만사] ‘국민청원’의 효능과 부작용

등록 : 2017.12.07 17:38
수정 : 2017.12.07 19:48

청와대는 할 수 있는 만큼은 다했고

대국민 법치주의 교육에는 상당효과

정치부전과 중앙집권 의식도 확인돼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 응답이 6일 3회째에 이르렀다. 100일 남짓에 백악관보다 두 배나 엄격한 ‘월 20만명’ 기준을 넘긴 청원이 3건이나 됐으니, 그동안 국민의 속앓이가 어쨌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의 말을 빌려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속이라도 좀 시원해지셨습니까”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앞서 ‘소년범 처벌 강화’나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응답에는 제법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나 ‘조두순 출소 반대’와 ‘주취(酒醉) 감경 폐지’ 청원을 함께 다룬 3차 응답에 대한 반응은 떨떠름하다. “하나 마나 한 소리”, “이럴 거면 무엇 하러…” 등이 대세다. 매번 등장한 조국 민정수석의 ‘볼수록 잘 생긴’ 얼굴을 보는 즐거움 빼고는 응답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애초의 열기와 환호가 많이 시들해졌다. 청와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청원을 신통한 효능의 신약(新藥)처럼 여긴 국민의 기대가 지나쳐 정확한 효능과 부작용에는 무심했던 탓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신약이 아니다. 헌법 26조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1항),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2항)고 규정해 둔 나라다. 그 헌법에 따라 청원법은 제4조에서 ‘피해의 구제’(1호) ‘법규 제ㆍ개정 또는 폐지(3호)’ 등을 모든 국가기관에 청원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실제로도 서울의 각 구청을 비롯한 행정기관에는 나날이 이런저런 ‘민원’이 들어오고, 국회에도 입법청원이 잇따른다.

복제약이지만, 고유 효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원법에 따른 청원은 서면 형식을 띠어야 하는 데다 국가기관의 심사ㆍ응답 기한이 90~150일이나 되어 국민의 불편과 답답증을 풀어 주기 어려웠다. 4,000만명의 남녀노소가 스마트폰으로 온갖 소식을 알리고, 논평하고, 제안하는 시대다. 한 달에 20만명만 “좋아요” “공감해요”를 날리면 국가최고기관인 청와대가 곧바로 답변을 하니 이런 즉효약이 또 있을까. 더욱이 ‘촛불혁명’으로 분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로도 다 식지 않은 직접민주주의 열기에 달뜬 국민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즉효약은 즉효약일 뿐, 특효약이 아니다. 잠시 열기를 달래고, 답답증을 풀어 줄지언정, 병인(病因)을 제거하진 못한다. 실은 3차 응답만이 아니라 1, 2차 응답도 예상대로였다. 낙태죄 폐지 청원은 청와대의 설명처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공익과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사익의 충돌에서 균형점을 찾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두 헌법적 권리의 선후는 헌법재판소가 가려야지, 청와대가 가릴 수는 없다. 또한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위헌’이나 ‘한정위헌’,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려도, 구체적 형법 개정은 입법권자인 국회의 몫이다. 그러니 2010년 이래 끊긴 실태조사를 내년에 재개하겠다는 다짐만도 청와대로서는 최선을 다한 셈이고, “응답하라, 청와대!” 외침에는 위안이 될 만했다. 아직 병은 그대로지만 희망은 던져졌고, 최종 성사 여부는 국회에 달렸다. 소년범 처벌 강화나 조두순 재심, 주취 감경 폐지 청원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할 만큼은 다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요, 법치주의다.

부작용(否作用)이 아니라 부작용(副作用)도 있었다. ‘국민청원’ 응답은 자칫 감정이나 흥분, 각각의 특별한 정의관을 앞세우기 쉬운 국민에 법치주의의 가치를 일깨웠다. 미남 교수의 특강이어서 교육효과가 유난했을 듯하다. 또 다른 긍정적 부작용은 주로 법률 개정 청원이 쇄도, 입법권자인 국회가 권리 위에 잠자고 있는, 정치 부전(不全)이라는 심각한 질병이 뚜렷이 확인됐다. 부정적 부작용도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적폐청산과 지방분권이 화두인데도 청와대로 청원이 밀려든다. 대통령과 중앙정부만 쳐다보는 국민인식의 새로운 강화 계기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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