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선 기자

등록 : 2017.05.15 04:40
수정 : 2017.05.15 04:40

행복한 척, 사랑받는 척..가면 벗고 싶어요

[오은영의 화해] 엄마에게 버려진 기억..사랑에 매달리는 20대

등록 : 2017.05.15 04:40
수정 : 2017.05.15 04:40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저는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았습니다. 슬프지 않은 척, 행복한 척, 사랑 받고 자란 아이인 척… 다 거짓말이었어요. 부모님은 늘 싸웠어요. 집을 태우겠다고 기름을 부은 적도 있어요. 돈 때문에요. 아버지가 할머니께 돈을 드리는 걸 어머니가 너무나 싫어했어요.

할머니는 좋은 분이었는데도요. 아버지가 실직하고 집안 사정이 더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집을 나갔습니다. 10살이었던 저는 친척 집을 옮겨 다니며 지냈어요. 어른들은 저를 걱정했지만 괜찮은 척 했어요. 밤마다 이불 속에서 몰래 울기만 했어요. 한 달 만에 돌아온 어머니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냈습니다. 한동안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은 어머니 뒷모습만 보며 살았어요. 말을 걸면 어머니는 벌컥 화를 냈어요. 어머니는 항상 제 잘못을 꼬집고 말로 상처를 줘요. 누구를 칭찬하거나 좋은 말을 해 주는 게 민망하다고 해요. 외할머니도 그런 사람이었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저와 동생을 버리려 했던 걸 사과하지도 않았어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지만 부모님께 알리지 못했어요. 혼날 것 같아서요. 부모님은 제가장녀니까 뭐든지 혼자 씩씩하게 잘해야 한다고 기대했거든요. 남동생 돌보는 것도 제게 맡겼고요. 가뜩이나 힘들게 사는 부모님께 걱정을 얹어 드리고 싶지도 않았어요.

부모님이 너무나 미웠지만 한번도 내색하지 못했어요. 집에서는 부모님이 싸워도 모르는 척, 상처 받지 않은 척 했어요. 친구들 앞에선 따뜻한 가정에서 듬뿍 사랑 받고 사는 밝은 아이인 척 했어요. 선생님께 검사 받는 일기도 거짓말로 썼어요. 남자친구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어요. 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모두 떠날 것 같아 두려웠어요. 사람들에게 늘 양보하고 희생했어요. 그래야 저 같은 아이한테도 친구가 남아 있을 테니까요.

게티이미지뱅크

여전히 안절부절하며 살아요. 엄마가 저를 또 버리지 않을지, 부모님이 또 싸우지 않을지,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지… 힘들다고 하면 부모님은 “너만 힘드냐, 우리도 힘들다”고 면박을 줍니다. 부모님과 대화하면 매번 상처를 받지만 털어내지 못해요. 부모님의 말들을 수없이 되새기며 괴로워합니다. 부모님의 말과 행동에 저를 묶어 두고 사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두렵고 원망스러우면서도 부모님에게 기대고 싶어요. 이제라도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을까 매달리게 돼요. 부모님으로부터, 아픈 과거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선미씨, 가명ㆍ25세ㆍ취업준비생)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기에 선미씨에게 그런 상처를 줬을까요. 그걸 알아야 선미씨가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어요. 선미씨 어머니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할머니께 드리는 돈을 아까워하고 자녀에게 사랑을 주는 것에 인색했던 거예요. 어머니는 감정 발달이 잘 되지 않은 사람이에요.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거나 타인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능력이 부족해요. 어머니 자신만 소중하게 생각하고 언제나 이해 받기 원하는 거죠. 어머니가 집을 나갔던 걸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것도 자신의 감정만 중요한 사람이라 그래요. 그런 어머니와 함께 산 선미씨도 감정 발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다행스러운 건 선미씨가 선량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선미씨가 어머니를 닮은 부분도 있지만 그걸 빨리 깨닫고 노력하면 어머니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어요. 거기서 희망을 찾으면 돼요.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고 싶어하는 게 아이의 본능입니다. 어린 선미씨는 집을 나간 어머니에게 버려졌다고 느꼈을 거예요. 그것도 돈 때문에요. 선미씨는 스스로 돈보다 못한 하찮고 형편 없는 존재라고 느꼈을 겁니다. 또 다시 버림 받을지 모른다는 엄청난 공포에 떨었을 테지요. 반려견도 유기되면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데 사람인 선미씨는 오죽했을까요. 아이가 부모에게 버려지는 건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놀이공원에서 잠깐 엄마를 잃어버렸던 기억이 수십 년 뒤에도 자꾸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요.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집 밖으로 내쫓거나 나가라고 위협하는 건 부모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머니가 집을 나간 건 선미씨가 사춘기에 접어 드는 때였어요. 그 나이의 아이는 자신의 능력으로 가족의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다고 믿어요. 부모가 계속 싸우거나 이혼하면 자신이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합니다. 선미씨도 그랬을 거예요. 결국 어머니로 인해 선미씨는 자존감이 엄청나게 떨어졌어요.

선미씨는 왜 자꾸 자신을 포장하려 할까요? 어머니처럼 욕심이 많거나 이기적이지 않고 양보심이 많은 좋은 사람, 그래서 존중 받고 사랑 받기에 충분한 사람인데도요. 어머니가 돈이라는 조건 때문에 선미씨를 버렸듯이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다고 겁내는 거예요. 다른 사람도 어머니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선미씨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지 못해요. 다른 사람에게 맞춰 주고 희생해야 조금이라도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거죠.

아이는 부모의 무관심을 가장 괴로워합니다. 관심을 요구하며 말썽을 부리는 아이에겐 부모가 꿀밤이라도 한 대 때리는 게 아이 입장에선 차라리 나을 수도 있어요. 어쨌거나 관심을 받는 거니까요. 선미씨가 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사랑 받는 존재라는 걸 끊임 없이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나를 낳아 준 엄마가 조금은 나를 사랑했네’라고 확인하고 싶어 해요. 그게 안 되면 존재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여기고 늘 불안해 해요.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크고 사랑에 목말라 하기 때문이죠. 선미씨는 낮에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 밤에는 광야에 발가벗고 혼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나요? 선미씨가 너무나 가엾네요.

게티이미지뱅크

선미씨 가족 안에선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 바뀌었어요. 선미씨는 부모 역할을 요구 받는 아이(Parental Child)였습니다. 정작 부모님은 아이처럼 툭하면 싸우거나 집을 나가고, 동생 돌보기를 선미씨에게 맡겼지요. 아이는 자라면서 엄청난 양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그걸 제대로 받지 못한 선미씨에겐 엄청난 결핍이 있어요. 결핍을 스스로 채우지 못하면 평생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야 할지 몰라요.

선미씨, 사람들의 사랑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요. 선미씨는 일부러 포장하지 않아도 멋진 사람이에요. 생각이 깊고 인내할 줄 알고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랐잖아요. 선미씨의 진가를 어머니만 모르는 거예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선미씨를 사랑하고 좋아할 거예요. 저만 해도 사연만 읽고도 선미씨가 금세 좋아진 걸요.

어머니가 선미씨를 미워했다고 생각하진 말아요. 어머니가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온 건 선미씨와 동생을 본능적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어머니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요. 어머니는 어른답게 자녀를 사랑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받기만 바라는 아이 같은 사람이에요. 선미씨가 노력한다고 어머니의 내면이 이제 와서 성장하진 않을 거예요. 어머니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선미씨를 위해 얘기하는 거예요. 먼저 선미씨의 상처를 돌보고 추스르세요. 선미씨에게 여유가 생기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 때 어머니의 결핍을 채워 드려도 괜찮아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어머니가 선미씨를 버린 게 아니라 아버지와의 문제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잠시 도망쳤던 거라고요. 어머니가 집을 나간 건 하지 말았어야 할 나쁜 행동이에요. 하지만 부모가 언제나 강할 수만은 없어요. 때로는 인간의 약한 부분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기도 하죠. 어머니는 너무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서 자식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기 자신만 보호하기 위해 도망쳤는지도 몰라요. 어려운 상황을 잘 참고 견딘 선미씨는 어머니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어머니에게 버림 받았다는 상처가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상처를 극복하는 열쇠를 가진 건 선미씨입니다. 어머니에게 사과를 받는다고 상처가 곧바로 싹 낫진 않을 거예요. 어머니를 선미씨 삶의 기준으로 삼지 말아요. 어머니라는 기준을 버리고 비워야 건강하고 현명한 삶의 기준을 다시 세울 수 있어요. 선미씨에게 오는 기회를 어머니 때문에 놓치지 말아요. 이 세상엔 선미씨를 존중하고 사랑해줄 사람이 많아요. 자신감을 갖고 선미씨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표현하세요. 이렇게 선미씨를 좋아하게 된 제 말을 믿어 보세요.”

취재ㆍ정리=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이 사연은 육아 관련 정보와 공감 콘텐츠를 모은 네이버 모바일 주제판 맘키즈와 한국일보가 공동 진행하는 이벤트를 통해 선정됐습니다.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한국일보 인터넷 사이트(www.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해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문재인 대통령 사과 대신 입장 표명으로 절충
강경화 “친척집에 위장전입” 거짓해명 논란
조국 민정수석, 과거 위장전입 비판 기고… 여야 공수교환에 곤혹
황유미, 김군, 그리고 기억되지 못한 죽음들
‘히잡 쓴 소녀’ 구하고 숨진 두 남성, 미국의 영웅이 되다
“이거 실화 아닙니까” 현실 반영한 ‘헬조선’ 게임들
[움직이는 바둑(6)] 무결점 알파고, 커제에 ‘3연승’ 하던 날

오늘의 사진

전국지자체평가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