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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재규어

입력
2016.09.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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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예전에는 ‘코미디’라고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개그’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말놀이가 중심이 되었다. 대사가 빨라지고, 재치가 번득이는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시청자는 크크크 웃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아마도 대본 작가들은 새롭고 기발한 대사를 찾느라고 매주 머리에 쥐가 나지 않을까 싶다.

최승호 시인의 ‘재규어’는 말이 말을 불러 생성된 동시다. ‘재규어’의 ‘재’가 ‘저 아이’를 뜻하는 ‘쟤’를 부르고 ‘잘난 척하며 으스대’는 ‘재다’로 연결된다. 사실 선후 관계는 없다. ‘쟤’에서 ‘재규어’로, ‘재다’로 연상되었을 수도 있고, ‘재다’가 불러낸 연상일 수도 있다. 이는 다시 동물 재규어의 특성과 연결된다. 가슴 근육과 다리 근육을 발달시켜 그것을 뽐내고 있는 재규어. 그런데 웬 꼬리 근육? “쟤 너무 재”는 게 눈꼴사나워 멋진 꼬리에도 “아령 같은 알통”을 만들라고 하라 빈정댄다. ‘아령’과 ‘알통’의 음성적 유사성과 형태적 유사성!

사실 이런 말놀이가 무슨 쓸 데가 있으랴. 무용하긴 하지만 두뇌 체조도 되고 재미있지 않은가. 언어감각이 뛰어날 뿐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사물에 대해 박식하지 않으면 말놀이도 쉽지 않다. 최승호 시인은 말놀이 동시집을 연달아 내놓아(‘말놀이 동시집’ 1~5, 2005~2010) 낡은 인식과 감수성을 답습하던 기성 동시에 충격을 주었다. 이전에도 말놀이가 있었고 말놀이 동시가 있었지만, 이처럼 본격적으로 말놀이 동시가 창작되고 독자들에게서 환영받은 적은 없었다. “얼룩말들이 모여서/덜룩말을 찾고 있네//덜룩말이 어디 갔지/얼룩덜룩말은 또 어디 간 거야”(‘얼룩말’)와 같이 말놀이와 난센스를 엮어 펼치는 게 본질이지만, “난 노가리 아가리도 무서워/네 아가리도 무서워/모든 아가리가 무서워”(‘아가리’)에서처럼 풍유(諷諭)나 전언이 읽히기도 한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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