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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김상조와 전성인, 누가 더 조급한가

입력
2018.07.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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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왼쪽) 공정거래위원장과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상조(왼쪽) 공정거래위원장과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같은 뿌리 두 사람, 성장ㆍ개혁 공방

준비 안 된 정부 벼랑 끝 떠밀기 곤란

개혁은 속도보다 지속가능성이 중요

문재인 정부 내각 중심축의 한 명으로 평가되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와 오랜 지기다. 경제학자로서 두 사람의 뿌리는 같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제자들로, 30년 전인 1989년 금융연구회라는 공부 모임에 참여하며 한배를 탔다. 여러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 두 사람은 “현실 참여는 지식인의 의무”라며 재벌개혁 등 사회경제적 현안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노선이 늘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에 대한 신뢰는 두텁다. 지난해 6월 김 위원장이 인사 검증에서 논문표절 논란 등으로 뭇매를 맞을 당시, 전 교수는 한 매체에 ‘김상조를 위한 변명’이란 장문의 칼럼으로 지지를 보냈다. 김 위원장이 ‘파렴치한 학자’로 매도되는데, 이는 30년 넘게 옆에서 보아 온 그의 모습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서 있는 곳에 따라 보이는 풍경은 다른 법이다. 요즘 두 사람은 언론 인터뷰와 칼럼 등을 통해 날 선 대립을 하고 있다. 공방의 쟁점은 ‘누가 더 조급한가’이다. 김 위원장이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먼저 포화를 날리자, 전 교수는 “성장을 위해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건 과거 정부의 발상과 똑같다. 진보진영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조급증을 보이는 것이다”며 연일 맞불을 놓고 있다. 얼마 전에는 진보진영 인사 323명이 지식인 선언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개혁을 포기하고 과거 회귀적인 행보를 보이는데, 이것이 문재인 정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였다. 전 교수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 공방의 기저에는 민생경제 악화가 있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웠는데 일자리는 곤두박질쳤고, 소득주도성장을 주창했는데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공정경제를 말하지만 최저임금의 불똥을 맞은 자영업자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니 김 위원장은 이런 현실은 외면한 채 보채기만 하는 진보진영을 향해 볼멘소리를 한 것이고, 전 교수는 그런 김 위원장의 행보를 ‘변심’, 심지어는 ‘변절’로까지 받아들이는 것일 테다.

정부의 성과 조급증은 개혁과 성장, 두 마리 토끼를 당장 다 잡을 수 있다는 근거 빈약한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보수 쪽이 패대기를 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그러니까 소득이 주도하는 성장은 안정된 성장일 순 있어도 동시에 속도를 내는 성장으로 기대하긴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어야 한다. 최저임금도 올려야겠고, 일자리도 늘려야겠고, 성장까지 해야겠다고 하니 성과가 날 리 없고 조바심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걸었으면 자영업자의 구조적 문제를 먼저 풀었어야 했고,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할 거면 민간에 일자리 창출 유인을 만들어 줬어야 했다. 이런 정부의 인식 패착과 준비 부족은 호된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 해도, 아직 준비도 안 된 정부를 향해 개혁은 약속한 속도로 밀어붙여야 한다며 벼랑 끝으로 떠미는 건 살인행위에 가깝다. 560만 자영업자의 탈출구가 마련되지 않았는데 고민 끝에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률 10.9%가 낮으니 더 높이라고 윽박을 지른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공약 달성에 실패한 데 사과한 것이 개혁 조급증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첫 단추가 되길 바란다. 이 정부의 여러 ‘김상조들’이 외곽의 많은 ‘전성인들’에게 떠밀려 외면해 왔던 현실을 냉정히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으면 한다. 전 교수는 “관료에 포획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본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이상적인 풍경만이 전부인 것처럼 스스로 정부를 포획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는 걸 인정했으면 좋겠다. 개혁은 단순히 5년 내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니라, 5년, 10년 뒤에 얼마나 많이 유지될 수 있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뒤집어질 개혁이라면, 지금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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