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는 상영시간만으로도 대작이다. 여러 가지 상영본이 존재하는 영화인데 국내 주문형비디오(VOD)로는 250분짜리를 만날 수 있다. 미국 뉴욕 뒷골목을 배경으로 미국 현대사의 숨은 한 페이지를 펼쳐내는 영화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삶과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당초 269분으로 상영되길 원했던 이 영화는 미국에서 139분짜리로 개봉했다. 오래 전 비디오테이프로 이 상영본을 접했을 때 이가 빠진 거대한 동그라미를 보는 듯했다. 뒤늦게 229분짜리 유럽 상영본을 보았을 때 이야기의 아귀가 훨씬 잘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장대한 이야기가 전하는 감동의 파도가 마음 속에서 더 크게 일렁였다.
영화 ‘내부자들’의 흥행이 극장가의 화제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내부자들’은 13일까지 707만38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찾았고, ‘내부자들’에 50분이 더해진 확장판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은 지난달 31일 개봉해 162만3,170명이 관람했다. 한 영화의 두 개 상영본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1,000만 고지를 향해 진군하는 초유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내부자들’은 당초 220분 분량으로 완성됐다. “투자배급사가 매우 좋아한 상영본”(이병헌)이었으나 결국 130분으로 편집돼 개봉됐다. 220분짜리 상영본으로 개봉하면 일일 상영 횟수가 줄고 흥행에 영향을 주리라는 우려가 작용했다. ‘내부자들’이 어느 정도 흥행하자 220분짜리 상영본을 다듬어 180분짜리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을 선보이게 됐다.
영화는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하나 뒷맛은 씁쓸하다.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은 130분짜리 ‘내부자들’보다 더 빼어난 완성도를 지녔다.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고 등장인물의 사연이 품은 재미도 더 쏠쏠하다. ‘내부자들’은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발췌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부자들’을 먼저 본 700만 관객은 똑같은 입장료를 내고도 덜 좋은 영화를 본 셈이다.
영화는 독특한 상품이다. 제작비 200억원이 들어간 영화이든 몇천만원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든 똑 같은 가격에 팔린다. 영화가 전하는 감동의 크기는 돈이나 시간으로 예단할 수 없어서다. 영화가 ‘문화 상품’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흥행에는 2시간 내외로 규격화된 상품이 아닌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문화를 접하고 싶은 관객의 욕구도 작용한 것 아닐까. 제대로 된 영화를 볼 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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