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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전제 군주와 외교관

입력
2018.06.24 18:49
수정
2018.06.27 18:2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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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북한의 핵프로그램에 관한 6자 회담에서 미국의 협상을 이끌고 있을 때 북한 대표단이 포함되고 중국이 주최한 첫 회의에 앞서 받은 지시사항을 살펴 봤다. 어떤 건배가 있더라도(전례가 없던 중국 주최 연회에서), 건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도주 잔에 손을 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테이블 앉을 때까지 팔짱을 낀 채 노려보면서 앉아있어야 했다. 나중에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주최자에게 미소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 명백하게, 단지 화가 난 것처럼 어딘가 응시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분명히 이 같은 지시사항을 수정했다. 사실,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끊임없는 찬사, 김정은의 장군들 중 한 명에 대한 어설프고 즉흥적인 거수 경례, 북한의 모든 것에 대한 양보 등에서 트럼프는 미국이 보다 폭 넓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가식을 버렸다. 그러나 트럼프가 선을 넘었을 지 모르지만, 미국 협상 대표단이 연회가 열리는 동안 포도주 잔을 건들지 않은 채 앉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1995년 9월 보스니아 전쟁의 마지막 달에 리차드 홀브룩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이끄는 미국 평화 협상 대표단이 베오그라드에 도착해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와 회담했다. 밀로세비치에 따르면, 그는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에게 중화기를 철수시키고 4년간 지속된 사라예보의 포위를 중단하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홀브룩에게 보스니아 세르비아 지도자들을 만나보라고 요구했다. 라드반 카라지치와 라트코 믈라디치 등 이들은 모두 나중에 전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홀브룩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밀로세비치는 “저쪽 넘어 있는 빌라에 있다"고 답했다. 홀브룩은 조속히 담판을 벌이기 위해 우리 대표단을 데려왔다. "우리가 그들을 만날까요? 그렇게 한다면 악수를 해야 할까요?" 그가 나에게 물었다. “수십만의 살해 당한 많은 사람들과 계속되는 포위 공격의 결과로 기아에 직면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악수를 하고 이 문제를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자"고 답했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 바로 다음날 사라예보 포위는 해제됐다.

악수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건 안되건 주먹을 흔들면서 으르렁대며 협상하는 것은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북한 대표단과 만날 예정이었다. 아마도 미국 내에서 지지를 받기 위해 펜스는 회의에 앞서 강한 어조로 요점을 전달했다. 그러자 북한 당국은 즉시 취소했다. 마치 요점이 뭐냐고 묻는 것처럼.

6자 회담을 다뤘던 기간 나는 북한에 대한 비방에 내 목소리를 추가하는 것을 피했다. 나는 곧 격주로 그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워싱턴에서 투지를 보이는 것은 내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핵 야심을 제거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TV 토크쇼에서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과 북한 사람들 건너편에 앉아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직접 만나서 하는 외교는 심각한 목적을 위한 심각한 수단이다. 멀리서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외교의 일부가 될 수 없다.

때로는 바디 랭귀지가 올바르게 전달되기가 어렵다.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로서, 워싱턴에서 받은 지시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감과 거의 비례하지 않는다. 이라크 야당이 당시 누리 알 말리키 총리를 낙마시키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들었다. 큰 경기가 있기 전에 고등학교 운동 선수들이 라커에서 시끄럽게 쾅쾅대는 것처럼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워싱턴 회의실에서는 큰 소리를 친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현장에서 나와 함께 말리키를 만났을 때 그들의 행동은 전혀 달랐다. 나는 그와 같은 모임들에 참석해 말리키가 나를 힐끗 쳐다보는 것을 관찰하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왜 내가 이전에 그에게 독재 정치와 그 끔찍한 결과에 대해 미국 정부의 인내심이 줄어들고 있다고 경고했는지 궁금했다.

모든 외교관은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여 협상한다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는 원하는 결과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에 대해 명확한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이슈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었다. 그 밖의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트럼프의 애정에 보답을 할 것인지 여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김정은은 거의 양보한 것이 없는데도, 미국 대통령이 한미 합동군사훈련(북한도 방어 목적 훈련임을 알고 있다)에 대해 북한의 우려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아마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보다 광범위하게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당사자 (한국 일본 러시아 중국)를 포함해 평화와 안보를 위한 틀이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최악이라는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도 다뤄져야 할 것이다. 내가 6자 회담에서 암시했던 것처럼 인권문제도 외교 관계의 궁극적인 구성 요소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 핵프로그램은 어떤 협상 의제보다 우선해야 한다. 트럼프의 북한 접근 방식이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싱가포르 정상 회담 이후의 외교에 의존한다. 당신에게 달려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 장관.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조지프 코벨 국제대학장ㆍ전 국무부 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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