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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귀열 영어] Language shapes thought and reality(언어는 사고와 실재를 바꾼다)

입력
2017.01.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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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서양인들은 한국어의 ‘우리’(we- our - us)에 주목한다. 옆에 계신 아버지를 소개할 때 ‘이 분이 우리 아버지다’라는 한국식 인사말을 그대로 번역하여 ‘This is OUR father’라고 말한 사례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옆에 있는 서양인도 한국인 아버지의 자식이 된다. 영어식 표현 ‘This is MY father’와 비교할 때 옮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동일한 사항을 달리 표현하는 이면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문화가 결부됐다. 언어는 문화의 거울(Language is a mirror of culture)라는 말은 이를 나타낸다.

인류학자들은 한국인의 ‘our’ 개념이 단일 민족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추측한다. 개인보다는 국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 문화에서도 뿌리를 찾는다. 또 다른 특징 중에는 한국어에서 주어가 자주 생략되는 현상이 있다. 식사하기 전 ‘잘 먹겠습니다’고 말할 때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에서도 주어가 없다. 주어를 생략해도 의사 전달에 문제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특유의 빨리 빨리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참고할 만하다.

그런데 이처럼 편리성을 추구하는 것이 되레 의미의 혼동이나 오해를 야기할 때가 많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과거에 BBK 대표라는 명함을 뿌리고 언론을 통해 홍보한 것이 드러났다. 이 후보가 ‘BBK라는 투자자문 회사를 설립했습니다’고 말한 비디오 영상이 나왔음에도 후보 측은 ‘주어 없는 문장이 아니더냐’며 발뺌했다. 주어가 없는 문장이기 때문에 책임도 의무도 없다는 것은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아연실색할 일이다. 주어를 종종 생략하는 것이 한국의 문화적 산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옹호해서도 안될 일이다. 우리말의 맹점은 경계하고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서양에도 그들 특유의 언어 문화가 있다. 정치인들은 책임 소재의 추궁을 당할 때 ‘실수가 있었습니다’(Mistakes were made)고 말한다. 이 문장은 전형적인 서양식 면피용 표현이다. 여기서도 주어는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동태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NYT에서는 이런 표현법을 ‘워싱턴 정가의 문장 패턴’(Classic Washington linguistic contruct)라고 불렀다. ‘면죄부 발언 스타일’(past exonerative tense), ‘면피용 수동태 문장’(passive-evasive e-pression) 같이 지탄하는 용어도 등장했다. 유사한 예로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은 듣는 사람에 따라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책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그 사람 절대 그럴 사람 아니다’처럼 엉뚱한 말을 해 본질을 흐렸다. 시중에서는 이를 ‘유체이탈화법’라고 부르고 있다. 영어에서는 ‘distancing language’라고 말한다. 즉, 자신과는 거리를 두는 표현법의 기저에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강력한 고집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말의 ‘our’는 문화적 산물이지만 이 용어가 정치에서 쓰이면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정치인들이 ‘우리’를 강조하면 그 외 사람들은 ‘저들’이 되고 만다. ‘We won(우리가 이겼다)’이라고 말하는 순간 ‘They lost(그들은 졌다)’가 된다. 서양에서는 ‘Us vs. Them’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움직임이 많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인들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 발언을 해서 분열과 결집을 조장한다. 일부러 네 편 내편을 가른다. 손바닥만한 한국 사회에서 선거 철에 ‘우리가 남’이라는 증오 언어(hatred language)가 남용되는 것은 지탄받을 만한 일이다. 사회의 언어는 그 구성원의 사고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물론(Language shapes the way we think) 세뇌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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