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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좋은 창의 비밀

입력
2017.06.2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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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은 아름다운 발명품이다. 창으로 인해 집 안의 삶은 획기적으로 아름다워졌다. 내부에서 바깥을 본다는 것, 비도 바람도 어떤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면서 안전하게 바깥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삶과 집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창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좋은 집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리적으로 좋은 요소, 심리적인 좋은 요소 등으로 무장한 스펙 좋은 집을 설명하려다가 결국 이렇게 대답하게 된다. “많은 노력을 들인 집이 좋은 집에 가깝지 않을까요”라고. 그런데 이것만은 이야기할 수 있겠다. 공들인 집과 아닌 집의 차이는 창문에서 드러난다고.

얼마 전 건축주와 함께 주택단지를 보러 갔다. 풍경 좋은 산의 한쪽 사면을 모두 택지개발해서 분양하는 곳으로 대부분 시행사가 만든 몇 가지 타입의 모델로 집을 짓는 곳이었다. 층층이 집들이 올라온 곳이라 좋은 전망을 갖기가 어려웠다. 어디에 어느 정도 크기의 창을 둘까. 이것은 집의 구조와 동선을 짜는 일만큼 중요해보였다. 옆에 한창 공사 중이던 시행사 주택을 보러 들어갔다. 방을 욱여넣기 위해 계단과 복도 화장실이 좁아진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기계적으로 뚫린 창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채광은 만족스럽지 않았고 전망은 고려되지 않았다. 창의 묘미가 사라진 방은 사람의 인격을 훼손하는 것 같았다.

창은 크게 3가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공기를 순환시켜주는 ‘환기’, 방으로 빛을 끌어들이는 ‘채광’, 그리고 내부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보여주는 일이다.

환기와 채광은 생활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앞뒤로 창이 있어 ‘맞바람’이 되는 구조의 집은 바람이 잘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더 쾌적한 공간이 된다. 한때 많이 지어졌던 탑상형 아파트에서 다시 ‘판상형’ 아파트로 사람들의 관심이 돌아간 것도, 초고층 주상복합의 인기가 떨어진 것도 자연 환기가 많은 이유를 차지한다. 아무리 에어컨 성능이 좋다 해도 자연 환기를 따를 수 없다. 공기가 자연적으로 순환되도록 창을 디자인하는 것은 매우 기본적인 것이다.

밝은 집은 건축주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부분이다. 채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창의 위치와 크기는 무척 세심해야 한다. 소위 ‘집장사 집’의 주방이 어두운 이유는 주방을 북쪽에 배치하면서 씽크대 상부장과 하부장 사이에 작은 창을 내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낮에도 전등을 켜야 하는 주방이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단열과 프라이버시를 고려해야 하는 조건에서 무조건 큰 창이 좋은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어두운 공간이 발생하면 빛을 깊숙이 끌어오기 위해서 내부 벽에 창을 내는 등 설계상 고려를 통해 채광이 좋은 집을 만드는 신공도 가능하다.

‘풍경’의 부분은 감성적인 영역이다. 건축주와 긴 대화도 필요하고 건물이 들어설 땅에서 상상하며 집 주변의 풍경을 이해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비싼 재료로 지은 번드르르한 집이라도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창 앞에 서봐야 이 집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집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뻔한 도시의 풍경이라도 창의 비례와 위치가 절묘하다면 아름다운 풍경화로 바뀔 수 있다. 창은 그런 비밀병기다. 바닥 위치에 창을 뚫어 뒹굴거리면서 바깥을 내다보는 뒹굴이창, 거실의 높은 곳에 가로로 길게 뚫어 풍경을 내부로 들인 거실창 등 기능에 더하여 재미를 주는 창도 만들 수 있다. 이 거실창을 두고 건축주는 ‘하늘 그림을 선물해 주셨네요’ 라고 했다. 창은 수학의 고차방정식을 푸는 일이며, 건축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본 집이 방 가운데 떡 하니 밋밋한 창을 뚫어 놓았다면 ‘신경 안 쓰고 지은 집’ 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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