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지평선] 튤립과 비트코인

입력
2017.12.05 16:04
30면
0 0

투기는 비정상적 현상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1996년 미국 증시의 투기적 상승세를 경고하면서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투기 국면에 이르면 상품의 정상적 가치나 잠재적 위험 같은 건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가격이 지나치다 싶어도 아직 사려는 사람이 더 많고, 그에 따라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으면 사람들은 기꺼이 가격 폭락의 위험을 감수하고 상품을 사는 비정상적 행동을 감행한다.

▦ 네덜란드 ‘튤립 투기’는 비정상의 전형이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는데, 터키로부터 전해진 튤립은 재배하기 힘든 귀한 꽃이자 부의 상징으로 꼽혔다. 원래 상류층 수요가 있었던 데다, 이듬해 수확할 알뿌리에 대한 선물거래까지 허용되면서 1633년부터는 하녀들까지 투자에 나설 정도가 됐다. 알뿌리 가격이 1개월 만에 50배까지 오르고, 알뿌리 1개 가격이 당시 네덜란드 가정의 1년 평균 생활비 300 길더의 10배인 3,000 길더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 하지만 ‘광기’에 의해 떠받쳐진 가격의 최후는 비참했다. 튤립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튤립 가격은 즉각 폭락해 버렸다. 요즘 가상화폐 투기 소식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1년 간 11배 상승해 지난 주엔 1만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1시간에 20%씩 가격이 급변동하는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고생들까지 비트코인 투기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실제 국내 비트코인 일일 거래액은 최근 코스피 거래액 6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 튤립과 비트코인은 다르다. 그땐 모든 투자 상품에 금처럼 안정적 ‘재산적 가치’가 인정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비트코인엔 그런 관념이 아예 없다. 오직 총량 2,100만개로 추정되는 비트코인 함수의 유한성에 따른 희소성과 존재의 확정성이 화폐적 가치를 형성해가고 있는 중이다. 형성된 비트코인 가치가 어느 날 갑자기 소멸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 가치는 튤립보다 훨씬 확고하다. 반면 비트코인 투자가 대부분 가격 상승만을 노린 투기라는 점에서는 튤립 투기와 유사하다. 국회에서는 4일 비트코인 법제화 공청회까지 열렸다. 비트코인 투기의 끝이 궁금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