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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 달걀 요리가 골칫거리로…

입력
2015.06.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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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요리에도 지단이 들어가나? 돌겠데이.”

요리교실에서 약방에 감초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달걀이다. 지단도 부치고, 찜도 만들고, 수란으로도 맛보는 달걀은 집에서도 프라이, 말이, 날 것 등 팔색조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미각을 즐겁게 한다. 그렇게 맛있던 달걀이 요리교실 문하생이 된 후부터 골칫거리로 탈바꿈했다.

가장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했던 달걀 요리가 지단이다. 실고추, 석이버섯 등과 함께 고명의 단골로 꼽히는 지단은 외견상 너무 간단하다. 흰자 노른자 분리해서 각각 얇게 부친 후 채 썰면 끝난다. 그런데 말이 쉽지, 실제로는 만들 때마다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달걀찜 제조과정과 완성된 서니사이드업(오른쪽 하단).
달걀찜 제조과정과 완성된 서니사이드업(오른쪽 하단).

지단이 첫 등장한 것은 세 번째 수업, 국수장국을 만들 때였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살짝 두른 후 약불에 익히다 젓가락으로 뒤집는다. 넓적한 뒤집개보다 젓가락으로 뒤집는 것이 훨씬 깔끔하다는 것을 경험상 알 수 있다. 노른자는 그나마 쉽다. 문제는 흰자다. 흰자를 프라이팬에 살짝 부어도 제 멋대로 돌아다닌다. 두께도 일정치 않고 불 조절을 조금만 잘못해도 거무틱틱한 자국이 생긴다.

지단 채썰기도 만만치 않다. 5㎝ 정도로 길이를 맞춘 후 썰다 보면 두께가 들쭉날쭉하거나 중간허리가 끊어지기 일쑤다. 수료하는 날까지 지단만큼은 요리강사의 합격 사인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지단에 비하면 호박, 오이, 당근, 소고기 채썰기는 난이도가 한참 낮은 편이다. 그 후로도 완자탕, 닭찜, 호박선, 탕평채, 칠절판 등 음식마다 지단은 빠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지단 채 썰다 요리수업 그만둔 수강생까지 있다고 한다. 경상도 사나이 성질 버리기 딱 좋은 종목이 지단이다. 경상도 처녀도 혼자 중얼거린다. “아이고 베맀다, 베맀어.”

항상 2% 모자랐던 달걀 요리도 있다. 바로 달걀찜이다. 한식1급조리사 자격증반에서 가르치는 달걀찜은 여느 음식점에서 먹어본 폭탄달걀찜과는 차원이 달랐다. 달걀 1개를 나무젓가락으로 푼다. 석이버섯을 채 썰어 소금과 참기름에 양념, 약불에서 볶는다. 실파나 대파를 1㎝로 썰고, 실고추도 1㎝ 길이로 잘라놓는다. 새우젓 10cc를 다져 소량의 물에 섞은 후 거즈에 넣어 짠다. 새우 눈의 검정색이 나오지 않도록 곱게 짜야 한다. 달걀과 물 100cc, 소금2.5g, 새우젓 15cc를 섞어 고운 채에 거른다. 그리곤 약불에서 15분 가량 중탕한다. 불을 끈 후 석이버섯과 실파, 실고추를 삼각형 모양으로 고명을 얹고 뜸을 들인다. 이런 모양의 달걀찜은 어쩌다 고급 일식집에서 상에 오르는 걸 본 적이 있었을 뿐이다.

성패는 달걀의 속살에 달려있다. 푸딩과 같은 점성을 가지면 되는데, 먹어보지 않아도 나무젓가락을 꽂았을 때 달걀이 묻어나지 않으면 성공을 예감해도 된다. 보통 집에서는 석이버섯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색깔이 같은 목이버섯으로 대용했다. 별도로 중탕하기 귀찮아 냄비 밥을 지을 때 같이 만드는 꾀를 냈다. 처음에는 달걀찜 작은 그릇에 별도의 뚜껑을 덮지 않는 바람에 냄비 안의 수분이 모두 흡수되어 버리는 불상사를 겪었다. 실패. 다음에는 달걀찜 그릇을 손으로 들어내다가 뜨거워 떨어뜨리는 바람에 또 실패. 그 후에도 이 달걀찜은 푸딩처럼 되기 일보직전에 개봉되곤 했다. 먹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폼생폼사’ 지망생에게는 늘 2% 부족한 종목이다.

달걀프라이만 먹던 나에게 수란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끓는 물에 넣어 만든 반숙이 수란이다. 소고기전골 만들 때였다. 냄비 안에 부채살 모양으로 야채를 배열한 후 중간에 양념한 소고기를 돌려 담아 원형을 만든다. 미리 만든 육수를 붓고 끓이다 달걀을 원형 안에 담는데, 반숙이 되면 바로 수란인 것이다. 큰딸이 달걀만 건져먹는 바람에 새로 소고기전골 데울 때마다 수란을 만들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달걀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달걀프라이 종류도 많지만 대표적인 것이 서니사이드업(Sunny Side Up)이다. 달걀이 태양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예쁜 모양의 서니사이드업 만들기는 쉽지만은 않다. 집집마다 모양도 제각각이다. 수십 년째 아무 생각 없이 프라이를 만들다 이제야 제대로 부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레시피를 수소문했다. 원형으로 프라이를 고정하는 도구도 등장했지만 가장 쉽게 만드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먼저 약불에 식용유를 프라이 크기만큼 두른다. 그리곤 달걀 노른자가 중간에 오게 놔주면 되는 것이다. 간장과 깨소금에 밥 비벼 먹을 때 반숙 서니사이드업을 하나 올려놓으면 그저 그만이다.

정작 도전에 실패한 것은 달걀말이다. 식성에 따라 양파도 갈아넣고 파프리카, 당근, 파, 치즈까지 넣어 먹는 이 음식은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요기가 된다. 의욕만 넘쳤을 때다. 달걀 4개를 풀어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풀고는 재료를 모두 올렸다. 밑부분이 조금 익었다는 느낌이 들 때 달걀을 접기 시작했더니 하나같이 허리가 끊어지는 것이었다. 윗부분은 달걀물조차 그대로였다. 요리강사한테 하소연했더니 혀를 찬다. “달걀물을 조금씩 얇게 깔아서 익으면 한번 말고, 또 깔아서 익으면 마는 과정을 수 차례 해야 한다”는 정석을 그제서야 알게 됐다. 물론 아줌마들은 모두 아는 상식이다.

요리를 몰랐을 때는 음식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식성도 까다롭지 않아서 온갖 음식을 다 소화했다. 또 배 고프면 맘 내키는 대로 만들어 먹었다. 물론 극히 한정된 범위 내에서다. 요리를 배우고부터는 모든 것이 꼬인다. 리샤오룽(李小龍)이 쿵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쿵푸를 몰랐을 때 내 몸은 자유로웠다. 배운 후부터 말을 듣지 않았다. 쿵푸를 다 익힌 후에는 다시 몸이 자유로웠다.” 내 요리는 언제쯤 자유로워질까.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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