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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어른의 역할

입력
2014.05.0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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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남미의 파타고니아 지역에 석 달 정도 머문 적이 있다. 텐트며 슬리핑백을 지고 다니며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립공원에서 캠핑을 하던 날들이었다. 그 날도 칠레의 우에르께우에 국립공원의 야영장에 혼자 머물고 있었다. 텐트를 치던 내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나를 도와 텐트를 치고, 빨랫줄을 걸어주던 루이스는 칠레의 육군 중령이었다. 가족과 아이들의 친구들까지 데리고 10여 명이 함께 해마다 2주씩 캠핑을 한다고 했다. 날이 저물 무렵, 루이스가 차를 마시던 내게 다가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가 넌지시 제안했다.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텐트를 옮기면 어떻겠냐고. 내가 텐트를 친 곳은 지대가 약간 낮은 데다가 계곡 옆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완곡히 거절했다.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그날 밤, 거센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텐트는 일부가 그물망으로 된 여름용이어서 곧 비가 안으로 들이치기 시작했다. 불안이 깊어갈 무렵, 루이스의 아들 하비에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희, 아유 오케이?” “노, 노, 아임 낫 오케이.”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는 그는 곧 삽을 들고 와 텐트 주변으로 물고랑을 파기 시작했다. 텐트 안으로 들이치던 빗물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이번에는 루이스가 직접 텐트 앞으로 찾아왔다. 비가 계속 쏟아질 것 같으니 짐만 챙겨서 자기들 텐트로 피신하자는 거였다. 루이스는 이미 내가 덮어쓸 비옷까지 챙겨 들고 있었다. 그 밤, 나는 루이스를 따라가 그의 조카 헤르만의 텐트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 루이스가 나를 불렀다. “지난밤에 고생했지?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좋을 거야.”라며 내게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말없이 내 젖은 신발을 벗겨 불가에서 말려주면서. 지난밤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할 법도 한데, 훈계나 잔소리를 늘어놓을 법도 한데, 그는 오늘은 그쪽 텐트에서 자도 괜찮을 거라는 말만 했다.

생각해보니 지난밤, 루이스는 반강제적으로 내 텐트를 옮기게 할 수도 있었다. 외국인인 나에게 칠레인으로서의 경험을 앞세워 설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최대한 내 선택을 존중하며 다른 방식으로 나를 도왔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태도로 나를 대피시켰다. 그날, 나는 루이스에게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았다. 진짜 어른은 아랫세대의 잘못을 단죄부터 하지 않는다. 어른의 역할은 다음 세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경험을 쌓고, 그 지혜를 아랫세대에게 배려있게 전달해주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먼저 겪은 경험이 젊은이들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겸허한 태도와 함께 말이다.

봄꽃 같은 아이들이 채 피지도 못한 채 어른들의 잘못으로 바닷속에서 죽어갔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어른이나 리더가 없음을 드러냈다. 우리 세대의 어른들에게는 내세울 만한 경험이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뿐이었던 걸까. 한 사회의 어른이라 불리는 이들에게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경험이 부족하다면 적어도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모자람을 인정하고 지혜를 구하는 겸손함이라도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내가 끔찍했던 건 ‘나는 현장을 잘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거나, ‘이 모든 일이 내 책임’이라고 진심으로 사죄한 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리더라 불리는 이들은 모두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염치가 없기까지 했다.

이번 일로 어른들은 아이들의 삶을 책임질 것처럼 말하지만 삶도, 죽음도 책임지지 못 한다는 게 드러났다. 어른들이 ‘요즘 아이들’ 운운하며 비난만 할 때도, 아이들은 그 어른들의 말을 믿고 따르다 목숨을 잃었다. 이제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경쟁이 아닌 협동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비극을 어른들이 빼앗았던 아이들의 삶을 돌려주는 기회로 삼자. 더 늦기 전에.

폭풍우 치던 칠레 파타고니아의 그 밤, 내 텐트를 비추던 루이스의 랜턴 불빛은 구원의 신호였다. 그 불빛이 차고 깊은 바닷속에 아직 갇혀있는 아이들에게도 어서 가 닿을 수 있기를.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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