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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김기종과 사드 그리고 진보

입력
2015.03.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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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한 김기종 씨가 14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동 경찰병원에서 퇴원, 경찰 호송차량에 올라 검찰로 향하던 중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한 김기종 씨가 14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동 경찰병원에서 퇴원, 경찰 호송차량에 올라 검찰로 향하던 중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의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은 얼마지 않아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했다. 그의 행동은 인간된 도리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만 같았을 뿐, 이 땅의 보수와 진보는 그 원인과 해법에서 각기 다른 소리를 냈다.

보수진영에게 김기종의 행동은 망령스런 종북주의가 정체를 드러낸 것이자, 어딘가 암약하고 있을 배후 세력에 대한 간접적 증거였다. 이들은 종북세력의 테러 위협이 현실화한 만큼 공안당국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수사하여 발본색원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에선 대사의 쾌유를 비는 부채춤과 큰절이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있는 세종로를 지나 미국대사관을 향했다.

진보진영에게는 당혹스런 일이었다. 김기종의 이력은 그를 진보진영의 일인으로 보는데 부족함이 없다. 더군다나 사건 직후 정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김기종이 외쳤던 구호들은 그간 많은 통일-평화운동 현장에서도 자주 외쳐진 것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진보진영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김기종이 진보의 핵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한때 그를 알았던 진보진영 사람들은 그 동안 김기종이 진보진영 내에서 얼마나 주변화된 삶을 살았는지, 나아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해왔는지를 증언했다. 다른 하나는 이 사건에 대한 보수의 반응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다.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매체들은 비상식적 사건 하나를 공안 사건으로 확대시키려는 종북몰이 시도와, 부채춤으로 나타난 강대국 사대주의의 퇴행성을 지적했다.

물론 진보진영이 하나의 단일한 조직이 아닌 다음에야 김기종 개인의 행동을 들어 진보진영 전체를 비난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일부 인사의 그릇된 행동으로 대다수의 양심적인 사람들을 매도하지 말라”는 방어적 변명은 어쩐지 진보진영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간 보수-여권에서 부조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왔던 비슷한 변명 앞에 진보진영이 비판의 예각을 누그러뜨린 적이 있었던가. 지난 해 ‘신은미 토크 콘서트’에서 벌어졌던 고등학생 폭발물 투척 사건이나 서북청년단 재건을 두고 진보진영이 보였던 반응들을 떠올려 보자. 김기종에게 “사회병” 진단을 내리는 건 너무 너그럽지 않은가.

3월 9일자 한겨레신문 정석구 칼럼은 이런 점에서 진보의 일반적 반응과 결이 다르다. 그는 신은미 사건을 테러라 하고 김기종 사건을 피습이라고 표현한 자사 기사들이 “국민의 신뢰를 잃을”만한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엄정하고 공평한 단어를 골라 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보수진영의 행태는 여전히 개탄스러운데, 이는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의 이익에 우리의 이익을 종속시킴으로써 자신들의 국내 권력을 유지하려는 부끄러운 술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당위론이야말로 안보와 국제관계에 대한 진보진영의 뿌리깊은 협애함이 노출되는 지점이다.

이제 김기종 사건은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미국과 중국이라는 국제정치적 차원으로 비화하는 중이다. 이 초국적 갈등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내놓는 해법은 ‘자주와 평화’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당위가 하나의 현실적 해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가진 현실적 힘과 능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십 년을 갈고 닦아 유수 강대국들의 지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던 햇볕정책도 미국의 정권 교체로 하루 아침에 좌절된 것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중국은 물론 일본과의 이해 충돌도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평가가 부정적으로 돌아선 지는 꽤 오래되었다.

진보진영이 진심으로 집권을 원한다면, 딜레마에 빠진 청와대를 힐난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국민이 원하는 건 이 같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구체적 방향과 대안이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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