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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이란 쿠르드족’이 움직인다

입력
2018.08.03 19: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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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수도인 아르빌의 정부청사 주변에서 쿠르드 보안군 대원들이 군용 차량 위에 모여 앉아 있다. 아르빌=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수도인 아르빌의 정부청사 주변에서 쿠르드 보안군 대원들이 군용 차량 위에 모여 앉아 있다. 아르빌=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주 중심도시인 마리반에서는 이란혁명수비대(이하 혁명수비대) 대원 11명이 쿠르드족 반군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공격의 주체는 이란 쿠르드족 자유생명당(PJAK)이었다. 이틀 후, 혁명수비대의 강경 라인을 대변해 온 ‘타스님 뉴스’는 안보 담당자인 호세인 졸파카리 내무부 차관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라크(북부) 쿠르드 자치정부가 테러리스트(이란 쿠르드 무장단체)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가 그들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졸파카리 차관이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KRG)’를 거론한 건 이란 쿠르드 무장정당들이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 북부 산악지대에 ‘망명 거점’을 두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2004년 창당한 PJAK는 이란-이라크 국경을 오가며 혁명수비대와 시설물을 공격해 왔다. 국경 너머 공격을 감행하는 건 이란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쿠르드 이슈 전문언론 ‘쿠르디스탄24’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이라크 쪽 바르즈빈 지역에 대한 이란의 폭격으로 쿠르드 반군 두 명이 사망하고 농민 다수가 부상을 입었다. PJAK 지도자 시아만드 모이니는 지난달 24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이야말로 이 지역 테러리즘의 원천”이라고 맹비난했다. PJAK는 2011년 이란 정부와 휴전을 맺은 후 한동안 소강상태에 있었으나, 2016년쯤부터 서서히 활동을 재개했고 최근 들어선 움직임이 부쩍 많아졌다.

비단 PJAK만이 아니다. 지난 6월8일 이란 쿠르드 민주당(KDPI)도 혁명수비대를 공격했고, 이로 인해 9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KDPI도 1996년 이후 활동이 잠잠했던 조직이지만, 전 지도자 사데크 샤라프칸디의 암살 23주기였던 2015년 9월16일 서아제르바이잔주 시노 지역에 주민들의 환호를 받고 입성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듬해부터 활동을 본격 재개하고 나섰다. 최근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격 행보를 보이고 있는 KDPI는 현재 이란 혁명수비대 암살 관련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오늘날 이란 북부 지역에 수립됐던 ‘마하바드 공화국’은 불과 1년 단명하고 말았지만 ‘유일했던 쿠르드족 국가’로 역사에 남아 있다. 이 공화국이 이란에 넘어간 이래 쿠르드족은 ‘나라 없는 민족’의 대명사가 됐다. 전 세계 3,5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쿠르드족은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 4개 국가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며 각국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해 왔다. 터키의 쿠르드노동자당(PKK), 시리아의 인민수비군대(YPG), 이라크의 페슈메르가(Peshmerga) 등과 같이, 이들 세 나라의 쿠르드족 무장조직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반면 이란 쿠르드족 정당이나 분리주의 운동은 별다른 이목을 끌지 못했다.

지난해 6월 시리아 락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리아의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군대(YPG) 대원들. 락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6월 시리아 락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리아의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군대(YPG) 대원들. 락카=로이터 연합뉴스

그렇다고 해서 이란 쿠르드족의 저항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79년 이란 혁명 후 나라 곳곳이 소요에 휩싸일 때, 쿠르드족도 KDPI를 중심으로 무장봉기에 나섰다. 이란 쿠르드족의 저항은 2004년부터 PJAK로 이어졌고 2016년 이후엔 KDPI와 PJAK 두 정당은 물론, 좌파 성향인 이란 쿠르디스탄 혁명 노동자당(약칭 코말라당), 쿠르디스탄자유당(PAK) 등 여러 무장정당들도 기지개를 폈다.

최근 이란의 쿠르드 정당들이 대(對)이란 공격, 특히 이란 신정체제의 수호군대나 다름없는 혁명수비대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는 건 작금의 중동 정세와 맞물려 생각할 때 의미심장하다. 시리아 전쟁을 거치면서 이 지역 일대의 쿠르드족 정당들은 다방면에서 중요한 ‘당사자(player)’로 자리매김했다. 두 가지 배경에서 특히 그렇다.

첫째, 복잡다단한 거미줄 전선으로 얽혔던 시리아 전쟁 7년간 최대 격전지는 단연 이슬람국가(IS)와 맞선 곳들이었다. IS가 패배하고 영토를 상실할 때까지, 쿠르드 민병대나 쿠르드 무장정당들이 기여한 바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라크 쪽의 ‘대(對) IS 전선’에서도 KRG 군대인 페슈메르가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여기엔 이란 쿠르드족도 다수 참여했다. 쿠르드족의 활약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은 시리아뿐 아니라, 이라크, 이란 등에서 자치와 독립을 꿈꿔 온 쿠르드족 무장정당들을 고무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의 쿠르드 민병대 YPG가 주도하는 시리아민주군(SDF)이 최근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자치와 지방분권을 논하기 시작한 것도 쿠르드 형제 조직들에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둘째,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이란은 중동 및 중앙아시아 일대의 핵심 패권국가로 급부상했다.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의 노력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란 쿠르드족의 행보를 이러한 ‘패권 프레임’에 맞춰 해석하는 건 불가피하다. 이란 쿠르드 무장정당들에 대한 미국의 지원 여부는 오랜 논란거리였다. 일례로 미국의 탐사보도 기자 세이무어 허쉬는 2006년 11월 뉴요커 기고를 통해 “PJAK가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무기 지원과 군사 훈련을 받아왔다”고 폭로한 바 있다. 허쉬는 최근 들어 ‘시리아 전쟁에 대한 과도한 음모론’을 제기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요원들이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의 쿠르드 거점 지역에서 비밀 공작을 벌였다”는 그의 해묵은 주장이 아예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이스라엘이 지난해 9월 이라크 쿠르디스탄 독립 투표 당시 유일한 찬성국가였다는 사실도 우연만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11~17일 KDPI의 무스타파 하지리, 코말라당의 압둘라 모흐타디 등 이란 쿠르드 무장정당의 지도자들이 미 워싱턴을 방문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달 25일 ‘알 모니터’에 실린 “이란 쿠르드족, 미국과 이란 분쟁의 최전선에 설 것인가?” 제하의 기사는 이들의 방문이 이라크 아르빌 주재 미국 영사로 이란 전문가인 스티븐 파긴이 임명된 시기와 맞물린 점에 주목했다. 쿠르드 방문단은 미 국무부와 싱크탱크 그룹을 두루 방문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중동 정책에 영향력이 큰 ‘정책 리서치 런던 센터’, 네오콘(신보수주의) 성향인 ‘허드슨 연구소’도 방문지에 포함됐다. 이란 쿠르드 무장정당들이 ‘이란 체제불안 지속화’를 꾀하는 미국 강경파들과 앞으로 어떤 관계 설정을 해 나갈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물론 가장 심각히 고려할 변수는 이란 국내 상황이다. 물가상승과 저임금, 체불임금에 항의하는 이란 노동자들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쿠르드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워싱턴 쿠르드 연구소’의 7월 마지막 주 주간보고서는 이란 서부 도시인 케르만샤에서 저임금에 항의하는 쿠르드족 버스기사들의 파업 소식을 전했다. 또 이란 북서부 사단다지 지역의 환경 미화원들이 7개월간 체불된 임금을 요구하며 10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나왔다. 시리아, 예멘 등 여러 중동 전쟁에 개입 중인 이란이 전쟁자본을 외부로 쏟아내는 사이, 그들의 내부 경제는 서방의 오랜 경제 제재의 유산과 맞물리면서 피폐화의 길로 더욱 내몰리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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