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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문화 다시보기] (1) 한국교회 움직인 교황의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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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문화 다시보기] (1) 한국교회 움직인 교황의 진정성

입력
2014.12.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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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 이끌며 바쁜 일정 속에도 세월호 유족ㆍ청년 신자들 만나

"중산층의 교회, 과거 부끄러워"

천주교 주교단 참회의 담화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나흘째인 8월 17일 충남 서산시 혜미읍성이 열리는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려 들어서는 길에 자신을 환영 나온 어린이의 눈을 마주치며 축복하고 있다. 교황은 한국에 머문 4박 5일 동안 이 시대 종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성하게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나흘째인 8월 17일 충남 서산시 혜미읍성이 열리는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려 들어서는 길에 자신을 환영 나온 어린이의 눈을 마주치며 축복하고 있다. 교황은 한국에 머문 4박 5일 동안 이 시대 종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성하게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둘째 날이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아시아 17개국 청년 신자들과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주위에서 조심스레 “오찬을 취소하는 게 어떠시냐”고 권유했다. 피곤해 보이는 교황의 모습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전 날도 교황은 이미 빡빡한 일정을 치렀다. 오전 10시 30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개인 미사, 대통령 면담, 청와대 연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방문 등 강행군을 했다. 그러고 다음날 오전 8시 46분발 KTX로 대전에 온 교황이었다. 미사 전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만났다. 시차 적응 할 새도 없는, 20대 팔팔한 청년도 지칠 일정이었다.

그런데 교황은 주위의 말을 물리쳤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교황께선 ‘내가 피곤하다고 청년들을 만나지 않으면 그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느냐’면서 예정대로 오찬을 했다”고 전했다. 식사 중에도 여기저기서 청년들이 “포프(Popeㆍ교황님)~!”하고 부르며 질문을 하는 통에 초반 20여분은 음식을 제대로 입에 대지 못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한 참석자가 “교황님께서 식사를 조금 하신 뒤 질문을 이어가는 게 어떠냐”고 당부할 정도였다. 그래도 교황은 싫은 내색이 없이 청년들에게 답했다. 오찬에 참석했던 가수 보아가 공개한 당시 사진 속 교황의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8월, 4박5일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남 서울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8월, 4박5일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남 서울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교황의 메시지가 갖는 힘은 이처럼 몸과 마음이 함께 하는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말만 하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 어느 종교보다 보수적이고 견고한 가톨릭교회를 움직일 수 있었을까. 가톨릭 신자건 아니건 세계인들이 교황에 열광하고 교회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 천주교회도 ‘교황 방한 이후’를 엄중한 숙제로 받아들였다. 교황이 던진 가장 큰 울림인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그것이다. 10월 말 열렸던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주교단은 담화문을 통해 “교종(교황)께서는 우리가 중산층의 공동체가 되고 가난한 이들이 감히 교회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음을 지적하셨다”며 “지금까지 깨어있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는 “교황의 메시지는 결국 교회가 초심으로 돌아가 항상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교회가 적극적으로 세속에 들어가 약자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이 움직인 건 천주교회뿐만이 아니었다. 개신교와 비기독교인들의 마음도 울렸다. 교황 방한 이후 개신교의 내로라하는 목사들 입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은 “하느님의 자비는 종교와 신념을 넘어 인간에게 주목하는 것임을 교황이 상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위 2년이 채 안돼 가난한 교회, 바티칸의 비리 척결, 동성애ㆍ이혼신자 포용, 세계 평화까지 두루 ‘개혁의 파장’을 일으키는 교황의 행보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해방신학자인 성정모 브라질 상파울루 감신대 교수는 “그가 얼마나 오래 교황직을 유지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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