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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10 10:00
수정 : 2015.11.10 21:08

[이정모 칼럼]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

등록 : 2015.11.10 10:00
수정 : 2015.11.10 21:08

제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11월 25일 독일의 과학학술지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 세 쪽짜리 짧은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이 논문에 대해 경상대 물리교육학과 이강영 교수는 “우주를 방정식으로 풀게 해줌으로써 현대물리학을 성립시킨 논문”이라고 평했다. 바로 일반상대성이론을 말한 것이다. 2015년 11월은 일반상대성이론 100주년을 축하해야 할 시기다.

일반상대성이론이 100살을 맞았다면 거기에 대해 덕담을 한마디씩 얹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수십 년 간 과학을 한 나도 일반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기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왜 현대물리학을 성립시키는지조차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GPS에 일반상대성이론이 활용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내비게이션이 활용되기 전부터도 우리는 아인슈타인을 좋아했다. 과학자로서의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아인슈타인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어록을 많이 인용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뇌의 10%만을 쓴다”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했다고 믿는 모든 말들이 정말로 아인슈타인이 한 말 맞을까? 그럴 리가 없다. 심지어 아인슈타인도 “내가 했다고들 하는 말 중에는 독일어를 잘못 번역한 것이나 아예 딴 사람이 지어낸 것이 많습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아인슈타인 어록의 진위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최근 나왔다.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가 바로 그것. 이 책은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정말로 “우리는 뇌의 10%만을 쓴다”라는 말을 했을까? 여기에 대한 의심은 ‘뇌과학자들이 지금도 할 수 없는 뇌의 활용률 측정을 그 옛날에 이론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했을까?’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전문 영역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에 호소하는 ‘권위에 의거하는 논증’은 대부분의 경우 유용한 전략이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사용한다면 이것은 논리의 오류가 된다.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는 아인슈타인이 “뇌의 10%” 운운했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밝힌다.

“벌이 멸종한다면 인류는 4년밖에 더 못 살 것이다. 벌이 없으면 꽃가루받이가 없고, 식물이 없고, 동물이 없고, 사람도 없다”라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도 많이 거론된다. 나도 벌이 멸종한다면 결국에는 사람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걸 왜 최근에야 듣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이 “4년”이라고 단정적인 표현을 썼다는 게 의심스럽다.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는 이것 역시 아인슈타인이 하지 않은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1994년 ‘프랑스 전국양봉연합’이 배포한 소책자에 실린 뒤로 여기저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1951년 12월 12일에 ‘여섯 명의 꼬마 과학자들’에게 “친애하는 어린이 여러분…햇빛이 없다면 세상에는 밀도, 빵도, 풀도, 소도, 고기도 우유도 없을 거야. 그리고 온 세상이 얼어붙을 거란다. 어떤 생명도 없을 거야”라고 보낸 편지를 변형한 것 같다는 것이다.

권위에 도전하고 신화를 부숨으로써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과학인데, 때로는 오히려 권위와 신화를 공고히 만드는 데 과학이 복무하기도 한다.

벌의 세계에 대한 이해도 그 중의 하나다. 개미, 꿀벌, 흰개미 같은 사회적 동물은 일꾼과 병정처럼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하도록 분화된 개체들로 복잡한 사회를 구성한다. 사회 집단의 중심에는 여왕이 있다. 여왕은 몸집이 매우 크고 집단의 거의 모든 자손을 생산하며 자기가 생산한 자식의 돌봄을 받는다. 일꾼이 평생 일만 하는 동안 여왕은 알을 낳는 것 외에는 빈둥거리면서 보낸다. 개미와 벌의 세계는 오로지 여왕을 위해 모든 개체들이 봉사할 때만이 사회가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난 10월 대전에서 열린 세계과학정상회의는 ‘과학기술 혁신과 미래 창조를 위한 우리의 다짐’을 발표하면서 끝났는데 여기에는 “국가 번영의 원동력은 강력한 리더십에 있음을 주목하고, 과학적ㆍ합리적 국정 운영을 펼치도록 적극 협조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여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나는 벌이나 개미 같은 극단적인 사회성 동물의 세계를 반영한 것 같아 재밌다고 느꼈다.

그런데 벌이나 개미의 세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세계과학정상회의 직후에 발표되었다. 말벌의 일종인 땅벌의 일벌들은 여왕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로운 여왕벌을 옹립한다는 것이다. 땅벌은 같은 세대의 일벌로 무리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 여왕벌을 살해한다.

또 땅벌의 경우 일벌들도 1년에 한 번은 수펄이 태어날 알을 낳는데, 여왕벌이 다양한 수펄의 정자를 사용하지 않고 특정한 수펄의 정자만으로 일벌을 생산하면 살해하고 새로운 여왕벌을 옹위하였다. 이전까지는 여왕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만 하는 것으로 알았던 일벌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왕벌을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하물며 땅벌도 이럴진데 이미 100년 전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인류는 어떠해야 할까? 과학은 신화를 공고히 하는 게 아니라 신화를 깨는 데 봉사해야 한다.

“과학자에게는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적극 나설 의무가 있습니다.… 과학자는…어렵게 얻은 정치적, 경제적 신념을 똑똑히 밝힐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에이브러햄 링컨 탄생 130주년에 맞추어서 한 말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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