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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세기의 재판과 실체적 진실 발견

입력
2017.08.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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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검에 의해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예고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민사재판은 물론이고, 이번 사건과 같은 형사재판의 최종적인 목적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다. 그런데, 형사재판절차를 통해 발견하려는 ‘실체적 진실’의 실체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공소사실에 적시된 피고인의 행위가 실제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재판을 통해 밝히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재판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특정 시점에 있었던 사건에 관한 것이므로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가 타임머신 등과 같은 장치의 도움을 받아서 과거의 그 사건 현장으로 직접 돌아가서 보지 않는 이상 실존적으로 존재했던 그 ‘실체적 진실’을 법정에서 발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설사 판사가 직접 그 사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판사가 피할 수 없는 인지적 한계와 오류의 가능성으로 인해 판사가 그 순간에 보거나 듣는 내용이 언제나 실존적 ‘실체적 진실’과 부합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특히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된 것과 같은 ‘부정한 청탁의 목적’ 등과 같은 주관적 측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의 판단은 더욱 그러하다.

결국 재판을 통해 발견하려는 실체적 진실은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과 관련해서 남겨진 물적 증거와 인적 증거의 기록들을 법정에서 재현함으로써 절차적으로 확인되고 간주되는 진실일 수밖에 없다. 재판을 통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이렇게 이해하는 경우 중요한 것은 공소사실에 관한 주장과 증거들이 법정에서 제출되는 절차의 안정성과 공정함, 그리고 그 주장과 증거들에 터 잡아서 법률적 판단에 이르게 되는 법관의 자격과 권위에 대한 신뢰할 수 있음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이재용 부회장 등이 개별 현안에 대하여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청탁한 사실은 인정되지 않지만, 당시 삼성이 현안으로 추진하고 있었던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작업’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최순실과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과 영재센터 지원은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 재단에 대한 지원은 부정한 청탁과 관계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법제도가 재판에서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둘러싸고 앞에서 지적된 바와 같은 절차적 적정성과 법관의 자격과 권위에 관해 충분히 신뢰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이다.

사실 이 부분은 한명숙 전 총리의 대법원 유죄판결 확정 및 복역기간 만료 이후에도 여당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재판과정의 적정성에 대한 문제제기, 법원행정처에서의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여부를 둘러싼 법관들 사이의 긴장관계, 새롭게 대법원장에 지명된 김명수 전 춘천지방법원장이 시행했다는 법관들에 의한 자율적인 사무분담 결정 등과 같은 사안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과 같이 사안이 복잡하고 관련된 다른 사건에 미칠 영향이 큰 사건에서 법관 3인으로 구성된 형사합의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판단이 이루어지는지, 사실관계 및 법률적 판단에 대하여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전제로 구성된 ‘합의부’ 재판에서 법조경력 20년 이상의 부장판사와 군법무관 제대 후 2년 혹은 3년 차 법관 생활을 하고 있는 배석판사들이 서로 얼마나 대등한 지위에서 실질적인 법률적 의견교환을 하고 있는지 등과 같은 흥미로운 생각할 거리가 존재한다.

이번 정부에서 대법원장 그리고 13명의 대법관 중 12명의 대법관에 대한 새로운 임명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대법원장 지명의 경우에서 본 바와 같은 파격이 새로운 사법부의 구성에서 얼마나 이어질 것인지, 이러한 파격들이 실체적 진실 발견에 관한 사법제도의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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