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처 공개 않는 ‘대학 쌈짓돈’
산정기준도 없어 액수 천차만별
서울 주요 사립대는 최소 90만원
올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입학한 나모(19)씨는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 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체 등록금 450만원 중 ‘입학금’ 명목으로 100만원 남짓이 적혀 있었기 때문. 학교 측에 쓰임새를 물었지만 ‘입학 후 교육과정에 필요한 비용’이라는 애매한 답변만 돌아 왔다. 나씨는 31일 “가뜩이나 비싼 등록금도 부담인데 사용처도 불분명한 입학금이 4분의1이나 차지해 학교가 신입생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학이 근거 없이 무분별하게 징수하는 입학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명분도 없고 용도는 더욱 모호한 입학금을 놓고 학교와 학생들 간 소송전으로까지 비화한 상황이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제재규정 미비를 이유로 손을 놓고 있어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학 입학금은 대학가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입학금의 사전적 의미는 신입생이 학교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지불하는 돈으로 등록금 고지서에 수업료, 학생회비와 함께 납부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액수는 대학별로 천차만별이다. 산정기준이 법에 명시되지 않아 자의적으로 정하다 보니 100만원 넘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2만~3만원만 내는 곳도 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조사한 올해 입학금 현황을 보면 가장 많은 고려대(103만4,000원)와 가장 적은 경남과학기술대(2만원)는 50배 차이가 난다. 서울 주요 사립대들도 입학금 명목으로 최소 90만원 이상을 징수하고 있다. 평균 10만원대의 입학금을 걷는 국ㆍ공립대와 비교해 9배 넘게 비싼 셈이다.
사용처도 비밀투성이다. 대부분 대학은 “정확한 용처는 비공개 사안”이라며 답변을 꺼렸다. 고려대 관계자는 “여태껏 안낸 학생도 없고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는 경우나 장애학생 등 일부를 제외하면 예외는 없다”고 말했다. 올해 2월 청년참여연대가 입학금 상위 32개 대학의 입학금 부과 기준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6개 대학은 아예 응하지도 않았다. 나머지 26개 학교는 ‘별도 기준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입학금이 사실상 대학의 쌈짓돈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대학이 맘대로 입학금을 걷을 수 있는 배경엔 모호한 법 조항이 자리잡고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에는 ‘학교 경영자는 수업료와 그 밖의 납부금을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을 뿐, 입학금과 관련한 별도 규정은 없다. 대학등록금을 설명하는 규칙도 ‘입학금은 입학 시 전액을 걷는다(4조4항)’는 조항 정도여서 강제 징수의 근거만 제공하고 있다.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선 입학금을 내지 않으면 합격이 취소돼 불만이 있더라도 일단 납부하고 봐야 하는 처지다. 올해 둘째 아들이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입학한 회사원 박모(54)씨는 “대입 뒷바라지를 하느라 쓴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뭔지도 모르는 100만원을 안내면 불합격 처리된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한숨지었다.
급기야 ‘묻지마 입학금’에 분노한 학생들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는 지난 25일 15개 대학 소속 학생 9,782명을 대신해 학교 법인과 국가를 상대로 입학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입학금 분쟁이 소송으로 발전한 것은 처음이다. 김주호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은 “입학금이 등록금 고지서에 포함돼 잘 모르고 지나가는 탓에 대학들이 근거 없이 과다 책정한 뒤 학교 운영비로 전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 사이에 불만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도 입학금 인상률 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대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뾰족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2011년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입학금이 최근 3년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입학금이 워낙 고액인데다 규정을 어겨도 강제할 방법은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행 법으로는 입학금 규모나 산정 근거를 정하도록 행정지도만 할 뿐 대학을 직접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등록금 심의위원회에 일부 학생 대표가 참여하기도 하나 우월적 지위를 가진 대학과 협의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을 감안해 정부가 부족한 대학재정을 보조하면서 입학금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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