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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428자 유서의 힘

입력
2018.08.06 17:25
수정
2018.08.06 18: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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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에서 이정미 대표와 심상정 의원이 헌화 분향 후 묵념하고 있다. / 오대근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에서 이정미 대표와 심상정 의원이 헌화 분향 후 묵념하고 있다. / 오대근기자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2009년 5월 말 '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다'는 글을 언론에 기고했다. 이 칼럼에서 그는 13줄 유서에 함축된 고인의 유지를 따라가며 특히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는 구절에 주목했다. 그는 "희망이 오욕으로 덮인 것을 바라보며 몸을 찢어야 하는 처절한 운명 앞에서도, 그것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아름답고 고귀한 정신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자기희생"이라고 해석했다.

▦ 보름 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당 앞으로 남긴 428자의 짧은 유서를 읽다가 황현산의 글이 다시 생각났다. 자신 때문에 상처입을 당과 동료들을 보호하고 진보정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마저 던진 그의 마지막 말이 오버랩돼서다. "참으로 어리석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중략)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기 바란다." 그가 지난해 5월 청와대 원내대표 회동 당시 황씨의 책 '밤이 선생이다'를 김정숙 여사에게 선물했으니 참 묘한 인연이다.

▦ 그는 멀고 험한 길을 지치지 않고 꼿꼿하게 걸어왔지만 가야할 길이 더 먼 사람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멈춘다는 그에게 심상정은 "노회찬의 꿈, 정의당의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그의 손을 놓지않고 함께 가겠다"고 다짐했고, 이정미는 "약자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지만 '없어서는 안될 단 한 사람'인 그의 유업을 이어 가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런 각오를 응원하듯 정의당 입당과 후원 물결이 넘실 댄다.

▦ "제 허물을 벌해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 달라"고 했던 마지막 호소가 통했던 것일까. 최근 갤럽조사에서 의석 5석의 정의당 지지율(15%ㆍ갤럽)이 112석의 자유한국당(11%)을 크게 제쳤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정의당 지지율 (14.3%)은 한국당(17.6%)을 오차범위 내로 추격했다. 자살 미화 운운하며 최소한의 예의마저 팽개친 한국당을 심판한 '신기록'이다. 노회찬은 뭐라고 할까. "50년 된 삼겹살 불판을 갈자고 10년을 외쳤더니 마침내 때가 왔다"며 주변에 술을 사겠다고 했을 것 같다. 술자리에선 곧장 "국회의원 특활비 폐지 및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숙제도 끝내자"고 설득했을 것이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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