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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누구를 위한 ‘머니볼’이었나

입력
2017.12.0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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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 전 넥센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장석 전 넥센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프로야구단 넥센 히어로즈는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지난 2007년 현대 유니콘스가 경영 악화로 매각을 선언한 뒤 나타난 새 주인은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소규모 투자회사를 운영하던 이장석(51) 전 넥센 대표였다. 프로야구단의 운영비는 연간 약 300억~400억원. 대기업이 아니면 언감생심이던 이 판에 용감하게 뛰어든 이 전 대표는 스폰서를 유치해 구단의 이름을 빌려주는 방식의 새로운 구단 형태를 착안했다. 우리담배를 메인스폰서로 끌어 들인 2008년엔 우리 히어로즈라는 간판을 달았고, 2010년부터는 넥센타이어가 구단의 최대 주주가 됐다.

초기엔 스폰서 유치 만으로 운영비를 충당할 수 없던 이 전 대표는 장원삼(삼성), 이현승(두산)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해 ‘장사꾼’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결국엔 구단을 되팔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 때마다 그는 “히어로즈에 애착을 갖고 있으며 자생력을 갖춘 야구단을 정착시키겠다”고 결백을 호소했다. 실제로 선수를 팔기만 했던 넥센이 2011년 자유계약선수(FA) 이택근을 50억원에 다시 데려가면서 야구계의 시선은 바뀌기 시작했다. 염경엽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2년부터는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넥센의 네이밍 스폰서는 집중 조명됐다. 프로야구단은 관중수입 등만으로 적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대기업이 야구단을 운영하는 건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를 이용한 홍보 효과, 사회 공헌을 통한 이미지 제고 측면이 컸다. 그런데 넥센이 연착륙에 성공하자 모기업에 손을 벌린 기존 구단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켜 수익 구조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었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걷던 이 전 대표는 지난해 9월 사기ㆍ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지난 2008년 재미교포 사업가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에게 “20억원을 투자하면 서울 히어로즈 지분 40%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한 이 전 대표는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KBO에 가입금 120억원을 내기 힘든 상황이 되자 홍 회장에게 투자를 제안한 것이다. 이에 홍 회장은 2008년 7, 8월 두 차례에 걸쳐 10억원씩 총 20억원을 지원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이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다. 단순 투자를 주장했던 이 전 대표는 2012년 12월 대한상사중재원이 ‘홍 회장에게 주식 16만4,000주를 양도하라’는 판정을 내리자 이에 불복해 채무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이 전 대표의 패소로 끝났다.

야구인들의 더 큰 분노는 그 다음부터다. 검찰은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거액의 배임과 횡령 혐의를 추가로 포착해 이 전 대표를 기소했다. 검찰은 지난달 6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표의 1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이 전 대표는 2012년 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목동야구장 내 매점 임대보증금 반환 등에 사용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빼돌린 회삿돈 20억8,100만원을 개인 비자금 등으로 쓴 혐의와 회사 정관을 어기고 인센티브를 받아내 회사에 17억원 손실을 끼치고, 지인에게 룸살롱을 인수하는 데 쓰라며 회삿돈 2억원을 빌려준 혐의도 있다. 이 밖에 상품권 환전 방식 등으로 28억2,300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2010년 2월이면 초창기 심각한 경영난으로 선수들을 판 것도 모자라 직원들 인건비에 심지어 야구장 식대까지 밀려 있던 최악의 상황을 간신히 빠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다.

검찰은 이 전 대표에게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하는 기본질서와 정의라는 덕목을 훼손시켰고 양심의 가책과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질타했다.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은 2000년대 초반 구단의 자금 사정에 맞는 운영 방식을 택했다. 값비싼 스타플레이어 영입을 포기하는 대신 몸값은 싸지만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끌어 모아 강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오클랜드의 성공 신화는 ‘머니볼’이라는 책으로 쓰여지면서 유명해졌다.

이 전 대표는 없는 살림에 팀 전력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해 빌리 빈 단장에 빗댄 '빌리 장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전 대표는 오는 8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그의 혐의가 모두 사실이라면 야구계가 칭송했던 ‘한국판 머니볼’의 추악한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셈이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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