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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무례한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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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무례한 부검

입력
2016.09.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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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연예인 최진실씨 자살 사건 때 부검 실시가 논란이 됐다. 밤늦게 술에 취해 귀가한 최씨는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방에 들어간 뒤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지인들에게 “아이들 부탁해”라는 문자를 보냈고 우울증에 시달려 온 등의 정황으로 자살이 확실했지만 검경은 유명인이란 이유로 부검을 결정했다. 유족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 부검에서 자살로 결론이 나자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반면 2006년 스포츠센터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개그맨 김형곤씨는 유명인이고 변사인데도 부검을 하지 않았다. 과거 비만력과 범죄 무관 정황 때문이었지만 부검 기준의 모호함을 드러냈다.

▦ 시신 훼손에 대한 거부감이 큰 우리 사회에서는 부검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사인이 명백한 경우 수사기관이 부검을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정서의 반영이다. 하지만 사회적 규범과 관행을 무시한 공권력의 자의적 부검은 종종 실시된다. 1991년 가두시위 도중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성균관대 김귀정씨가 사망하자 검경은 부검으로 사인을 밝히겠다고 나섰다. 당시 재야단체와 학생들은 과잉진압을 인정하지 않는 경찰에 맞서 보름 동안 부검을 거부했다. 같은 해 의문사한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시신을 확보하기 위해 경찰이 영안실 벽을 부수고 들어가 강제 부검을 실시한 일도 있다.

▦ 경찰 물대포를 맞고 의식불명이 됐다가 숨진 백남기씨의 부검에 유족과 시민단체가 반대하는 배경에는 경찰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병원에 실려왔을 때 외상성 뇌출혈 진단 판정을 받았고 사망에 이를 때까지 모든 진료기록이 서울대병원에 남아있는 마당에 부검을 하려는 것은 과잉진압 책임 회피 의도라는 것이다. 경찰의 직사 살수를 불법으로 인정한 법원 판결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도 이들 주장의 타당성을 뒷받침한다.

▦ 부검 영장을 한차례 기각한 법원이 조건부로 영장을 발부하면서 상황이 더욱 꼬였다. 부검 장소와 방법에서 유족 의사를 존중하도록 했으나 조건이 붙은 영장 효력에 대한 논란으로 번졌다. 유족이 부검을 끝까지 반대할 경우 영장 집행이 가능한지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달라 경찰도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망자를 욕되게 하는 부검은 접고 유족에게 사과부터 하는 게 경찰의 도리다. 25년 전과 지금의 경찰은 달라야 하지 않나.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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