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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불 붙은’ 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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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불 붙은’ 정현

입력
2018.01.25 16:4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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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는 12세기 프랑스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왕족, 귀족 등 상류층에서 공을 손바닥으로 벽에 때리는 놀이가 유행했는데, 이것이 영국으로 건너가 테니스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테니스라는 말도 ‘때리다’라는 프랑스어 ‘tenez’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현대의 경기 규칙 등이 영국에서 만들어지고, 1877년 윔블던 대회가 처음 열리면서 테니스 종주국은 영국이 차지했다. 4대 메이저 대회 중에서도 윔블던이 최고 권위를 갖는 이유다.

▦ 상류층 놀이여서인지 초창기 테니스 대회는 권위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유색인종과 프로선수의 출전을 막았고, 복장도 엄격했다. 올해로 132회째를 맞는 윔블던은 아직도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흰색 유니폼만 착용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그래서 매년 해프닝이 벌어진다. 여자선수가 색깔 있는 속옷을 입고 나왔다가 경기 중 갈아입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땀에 젖는 등의 이유로 속옷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4년에는 아예 속옷까지 흰색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1890년대 미국 선교사와 의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라켓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 고종이 “어찌 저런 일을 하인한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는 일화가 있다.

▦ 올해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에서 노박 조코비치 등 초일류 선수를 잇따라 격파하며 4강에 오른 정현 선수가 세계 테니스계에 일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 언론이 정현의 플레이를 극찬하고, 호주에서는 정현이 가장 매력적인 선수로 꼽힐 정도다. 조코비치는 경기 후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승리할 자격이 충분했다”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다. 실력뿐 아니라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거침없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중과 시청자를 매료시켜 이미 이번 대회 주인공 자리를 예약했다.

▦ 아시아 남자선수가 테니스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정현도 우승할 정도의 실력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기만으로도 우승 못지 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선천적 시력장애와 올림픽 출전을 포기할 정도의 슬럼프 등 많은 시련을 딛고 일어선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체격 등 아시아 선수에게는 절대 불리하다는 테니스에서 22세 청년이 보여준 ‘신선한 질주’는 넘어서지 못할 벽은 없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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