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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사업까지 다시 꺼내는 정치권…왜 SOC에 목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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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사업까지 다시 꺼내는 정치권…왜 SOC에 목메나

입력
2015.12.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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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다가오면 지역 표심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욕구는 어느 정부에나 있죠. 더구나 정권 초반에는 각종 구조개혁 등에 나서다가도 후반기에 접어들면 ‘삽질’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자 하는 유혹에도 쉽게 빠지기 마련입니다.”

경제부처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정부와 정치권의 사회간접자본(SOC) 유혹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또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SOC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쏟아진 SOC 사업들은 추진 단계에서 과도한 사업비나 타당성조사 불합격 등으로 보류된 적이 있는 ‘묵은’ 사업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이후 최대 사업비(6조7,000억원)가 투입되는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사업이다. 이 사업은 2003년 경부고속도로의 수도권 구간 교통혼잡을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처음 추진됐고 이 때문에 이름도 ‘제2경부고속도로’로 불렸다.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는 등 사업에 탄력을 받았지만 7조원에 가까운 사업비가 장애물이 됐다. 이미 4대강 사업에 22조원의 혈세를 쓴 탓에 경기부양을 이유로 추가 사업을 벌이기가 부담됐던 것이다. 그렇게 잊혀졌던 사업은 지난해 6ㆍ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반짝 수면 위로 올랐고, 지난달 국토부가 민간사업자와 손익을 공유하는 민자사업(BTO-a)으로 추진키로 하면서 공식화됐다.

1일 발표한 월곶~판교 철도 건설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지만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 때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과 겹친다는 이유로 사업이 보류됐다가 이번에 타당성 재조사를 통과한 뒤 사업계획이 확정됐다. 3일 발표된 흑산공항 역시 지난해 기본계획 수립 당시 철새도래지인 이곳에 공항을 지으면 철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환경부의 평가로 한 차례 반려된 적이 있다. 결국 제주2공항 건설이나 중부ㆍ영동고속도로 재포장 사업 정도만 신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이유로 진도가 안 나갔던 사업들이 최근 속도가 붙어 한번에 추진되고 있는 데에 대해 정부는 “우연일 뿐”이라고 말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근 발표한 SOC사업들은 정권과 상관없이 내부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던 것들인데 공교롭게도 타당성 재조사가 마무리된 시기나 저금리 등 사업비 조달에 유리한 금융환경에 맞춰 추진하는 사업들의 시기가 비슷해진 것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이나 지역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효과는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도로 정비와 정체구간 해소 등을 위한 사업은 원래 국토부 소관이며, 이를 통해 침체된 경기도 살리는 ‘1석2조’의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도 SOC 사업의 긍정적인 효과는 어느 정도 인정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서 경기 지표가 워낙 안 좋게 나오니까 부양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SOC사업에 집중하려고 하는 방향은 맞는 것 같다”며 “제주 신공항사업이나 서울~세종고속도로, 동서철도망 사업 등 SOC사업은 사업비 상당액이 토지 보상비로 풀리고 건설 업체도 많이 동원되기 때문에 부양 효과가 수치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배경에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게 문제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정권마다 총선 등 선거가 다가오면 표심을 자극하는 SOC사업을 벌이는 게 관례처럼 되고 있다”며 “충청권만 봐도 선거 때마다 승패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 지역인데 이번에는 고속도로 사업 등으로 표를 얻으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 때도 19대 총선(2012년4월)을 앞두고 2011년 11월 이후 광주~원주민자고속도로 착공, 인천 서창~장수고속도로 건설 추진 등을 줄줄이 발표하고 15곳의 도로와 철도를 공식 개통했다.

이렇게 정부가 사업 발표를 서두르다 보면 SOC사업에 대한 검토와 감시, 견제 기능이 약해져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2공항의 경우만 보더라도 주민의견수렴이나 공개적인 사업타당성 검토 없이 급작스레 추진되면서 해당 지역주민들이 격렬히 반대하며 정부에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이런 확장 재정 정책이 장기적으로 볼 때 저성장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지 못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표를 의식한 것이라고 해도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면 SOC의 필요성이 있겠지만 지금 정부가 벌이는 고속도로, 철도 건설 사업은 기본적으로 활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성장기 때나 통하는 방식”이라며 “우리는 장기 저성장의 초입에 있기 때문에 SOC만으로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이런 토목건설만을 밀어붙이다가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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